오피니언 사설

환율하락, 경쟁력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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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꼭 요즘 우리 경제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던 달러당 950원 선이 무너진 데 이어 이번 주에는 940원 선마저 깨졌다. 이런 하락 추세라면 조만간 달러당 900원 선도 위험할지 모른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한계상황에 직면한 수출기업들은 진작부터 아우성이다. "외환당국이 달러당 950원 선은 지켜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매출이 1조5000억원, 이익은 8000억원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대기업이 이럴진대 환율 급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미 상당수 중소 수출기업이 문을 닫았거나, 출혈 수출로 버티고 있다. 환율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중소 수출기업의 무더기 도산 사태마저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환율 하락의 기조가 당분간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달러 약세 분위기가 형성된 데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계속 국내로 밀려오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 매도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 방어에 나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해 말까지 원화를 퍼부어 환율을 지키려던 전략이 이미 한계에 이른 데다 이 판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환투기 세력에 좋은 일을 시켜주기 십상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변동 위험의 회피 수단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해법은 결국 기업들이 환율에 기대지 않고도 버틸 수 있도록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길밖에 없다. 환율이 지나치게 급락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수준의 개입은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와 함께 근본적인 환율 조정 방안으로 국내에 쌓이는 달러를 해외투자 등으로 적절하게 빼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