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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씨, 국장님 서울 가셔야 하니까 이거 빨리!”

중앙일보

입력

“세종 씨, 국장님 서울 가셔야 하니까 이거 빨리!”

세종청사 공무원의 일상

5급 공무원인 세종 씨는 서울로 갈 국장을 위해 빠르게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국장은 세종 씨를 닦달하던 과장을 데리고 서울로 가버렸다. 세종 씨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다. 정작 지속해서 해오던 일을 보고하려고 하면 국장과 과장의 자리엔 아무도 없다. 세종 씨에게 청사에서 상사 찾기는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인 경우가 많다.

2012년 7월, 정부 직할 특별자치시로 시작한 세종특별자치시. 행정 중심복합도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2년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중앙 행정기관 40개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부세종청사(아래 세종청사)에 자리한 기관들은 장관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세종청사가 일터다.

정부는 세종시 공무원이 회의를 이유로 서울로 가는 걸 최소화하려고 영상회의를 도입했다. 2016년 4월, 기획재정부에서는 영상회의 이용도를 성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지난해에는 국정감사가 영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고 올해 2월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세종청사에는 여전히 서울로 가는 공무원들이 많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일은 ‘세종’이 아닌 '서울’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26번의 국무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가 열린 적은 1번뿐이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10번의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진행되고, 나머지는 전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국정 현안 점검 조정회의’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18번 열린 현안 점검 회의는 세종에서 7번 개최됐고, 서울에서 11번 열렸다. 하지만 서울청사에서 진행된 회의 중 1번만 세종청사와 영상회의로 진행됐다.

국정 현안 점검 회의는 상대적으로 세종에서 많이 열렸지만, 장관들의 세종청사 영상회의실 출석률은 저조하다. 지난 1월 11일엔 세종청사 영상회의실엔 이낙연 총리 혼자뿐이었다. 4월 26일 열린 현안점검 회의에서 이 총리 외 3명만이 세종청사에서 회의에 참여했다. 이날(26일) 이 총리는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 일주일 후 열린 회의에는 10명의 장관이 세종청사 영상회의실에 나타나기도 했다.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보고 싶어도, 국회의원들이 장관 등 고위 공무원에게 출석을 요구하면 서울로 가야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들을 보좌하기 위한 간부도 함께 서울로 향한다. 취재 결과, 의원실이나 국회에도 영상회의 시스템은 구축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회의 성격에 따라 대면 접촉이 필요한 경우 이동은 불가피하다.

공무원 A 씨는 “국회에서 장관과 같은 고위급 간부 출석 요구를 하면 과장급 이상 간부가 동행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상사가 없어 실무자들은 결재 등 업무처리에 있어서 시간 지연과 같은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B 씨는 “국회, 의원실 등 다양한 곳에서도 (영상회의가) 잘 이뤄지게 인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토 균형 개발을 목표로 세종시가 출범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아직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세종 씨가 만든 보고서를 갖고 상경한 국장과 과장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오지혜(연세대 사회학과 4)·정철희(연세대 노어노문과 4) 국회이전프로젝트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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