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각료회의] 쌀 시장도 빗장 더 풀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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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개방은 이번 칸쿤 각료회의의 직접적인 논의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여러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본격적인 협상은 내년에 시작된다.

그러나 각료 선언문 초안에 비춰볼 때 쌀 수입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게 돼있다.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관세화 유예)고 해서 한톨의 쌀도 수입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의 쌀은 의무적으로 아주 낮은 관세로 수입해야 하고, 그 양도 점점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수입된 쌀은 가공용으로만 이용됐지만 미국은 이런 쌀을 일반 소매용으로 판매하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협상 결과에 따라 수입 쌀이 일반 수퍼에서 판매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산 쌀은 수입 쌀에 비해 값이 4~5배 비싸 가격으로는 도저히 경쟁이 되질 않는다.

◇쌀 수입 확대 불가피=협상은 얻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내놓는 것이 원칙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초안에서 관세를 높게 물리는 농산물에 대해선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으로 끝나는 쌀 시장 개방 유예기간이 연장되더라도 수출국들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거부할 명분이 없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현재 소비량의 4%인 쌀 의무수입물량을 8%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쌀 시장을 개방할 경우에 쌀에 높은 관세를 매길 수는 있다. 그러나 수입 쌀 가격과 국산 쌀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려면 4백~5백%의 관세를 붙여야 하는데 수출국들은 1백% 이상의 관세는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또 쌀의 관세를 높게 매기면 쌀 이외의 다른 농산물의 수입을 그만큼 늘려야 한다.

◇쌀 농가 어떻게 되나=오랫동안 농민들의 소득보전 수단이었던 추곡수매제는 이미 폐지가 검토되고 있다.

농림부는 이르면 2006년부터 추곡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추곡수매제는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쌀을 사들여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WTO가 금지하고 있는 제도다.

반면 공공비축제는 전쟁.흉년 등에 대비해 단순히 재고 쌀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가에 사고팔기 때문에 WTO가 허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농가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소규모 쌀 농가는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로 쌀 농사를 지어야만 생산비를 낮출 수 있고 수입 쌀과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 쌀 농사만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6ha 이상 경작 농가를 7만 가구 육성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대신 고령.영세농은 쌀 농사를 포기하는 대가로 연금 형태의 보조금을 줄 계획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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