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국민기업 포스코의 '깜깜이' 회장 선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예정에 없었으나 언론의 요청이 몰려 배포한다."

포스코는 13일 오전 이런 설명과 함께 보도자료를 내놨다.

여섯 문장으로 간략하게 쓰인 보도자료의 내용은 '차기 회장 후보군을 11명으로 압축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1명이 누구인지, 어떤 경쟁력이 있어 남았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포스코는 전날 승계 카운슬과 이사회를 잇따라 열고 차기 회장 후보군을 압축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 바람에 '깜깜이 선출' 논란이 벌어지자 이날 부랴부랴 자료를 내놓으면서 그저 '11명'이라고만 밝힌 것이다. 4년 전 5배수로 후보를 압축했을 때 면면을 밝힌 데 비하면 오히려 더 불투명해졌다.

선출과정이 석연치 않았던 대목은 이뿐 아니다. 승계 카운슬은 후보자 압축 하루 전인 11일, 갑자기 인재 발굴 업체(서치펌)에 외부 후보자 추가로 추천할 것을 요구했다. 카운슬 측은 "외부 후보자 풀(pool)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외부 후보가 이미 8명이나 추천된 상황이었다. 업계에서는 당장 "정권이 염두에 둔 인물을 추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의심을 사면서도 포스코 측은 추가로 추천 받은 인물이 누구인지, 그가 막판에 합류한 뒤 11명에 포함됐는지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포스코

포스코

포스코는 이날 짤막한 보도자료 말미에 긴 문장으로 이렇게 썼다. "또한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승계 카운슬에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100년 기업 포스코를 이끌어나갈 유능한 CEO 후보를 선정하고 있는 바, 정치권 연관설, 특정 후보 내정 혹은 배제설 등 추측 보도는 자제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드린다."

1위 철강업체이자 재계 6위 대기업의 회장 선출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역대 포스코 회장 자리가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역대 회장 8명이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귀한 시간을 쪼개 모인 승계 카운슬 멤버들은 언론 보도에 대해 논하는 데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고민하는 게 순서다. 납득할 만한 설명과 함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 중'이라고 보도자료를 내놓지 않아도 국민이 알아서 판단한다.

1973년 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태준 회장과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1973년 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태준 회장과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국내 철강산업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로 위축된 마당에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철강(219억 달러) 가운데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맹공을 퍼붓고 있다.
철강 업계 맏이인 포스코의 차기 회장 자리는 정권이 '낙하산'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선물이어서는 안된다. 포스코, 나아가 국내 철강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식견과 혜안을 갖춘 전문가라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카운슬은 추후 이들 11명 중 5명을 추린 뒤 심층 면접을 통해 후보군을 2명으로 다시 압축할 계획이다. 이후 두 차례의 심층 면접을 거쳐 최종 단일후보를 선정하고 이 단일 후보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새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다.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고 납득할만한 진행을 기대한다. 그래야 진짜 '국민기업'이다.
박태희 산업부 기자 adonis55@joongang.co.kr

박태희기자

박태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