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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샷' 외치며 놀다 보면 화병이 싹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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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이런 말을 하고 콧노래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교수라는 것이 재미있다. 명지대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김정운(44)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가문화와 여가정보학을 연구하고 사회에 알리는 학자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 유학 가 문화심리학 공부를 하다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 여가학이라고 생각해 깊이 빠졌습니다."

그는 한국인이 노동은 제일 잘하는데 노동 이외의 것은 대부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에게 유독 '분노'와 '적개심'이 강한 것은 여가와 다양한 놀이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폭탄주를 마시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재미를 느끼면서 분노와 적개심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반응인데 결국 몸만 망가집니다."

얼마 전 이 여가학자와 경기도 여주에 있는 블루헤런CC에서 골프를 함께했다. 성형외과 의사, 그리고 중견기업 사장이 또 다른 동반자였다.

동코스 1번 홀은 우측으로 꺾여 있는 도그레그 코스인데 김 교수는 겁 없이 가로질러 치더니 OB를 내면서 트리플 보기를 했다. 2번 홀은 오른쪽에 커다란 연못이 자리 잡은 파3홀(175야드). 여기서도 슬라이스가 나면서 공이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더블보기. 세 번째 홀은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진 443야드 파4홀인데 다시 더블보기. 그러니까 세 홀 만에 7타를 오버했다. 김 교수는 구력 3년에 최저타 기록이 86타인 비교적 초보 골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가정보학과를 개설하고 논문 쓰고 책 내고 강의와 방송 다니느라 골프 칠 시간이 적었어요."

연습장에서 열심히 레슨을 받았다는 그는 스윙 자세도 좋고 드라이버 비거리도 240야드 정도로 만만치 않았는데 어프로치와 퍼팅에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심리적으로 골프가 한국인에게 좋은 이유가 있나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화자, 얼씨구, 절씨구, 얼쑤, 좋~다'라는 감탄사를 잘 썼는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노동과 경쟁에 찌들면서 사라진 거죠. 그런데 골프장에 오니까 이 감탄사가 살아 있더라고요. '나이스, 굿샷, 조~타!'"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퍼블릭 골프장이 많이 보급돼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계속 저조하던 김 교수가 후반에 드디어 사고를 쳤다. 서코스 4번 홀(156야드)에서 버디를 한 것이다. 삼면이 큰 연못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에서 깃대 1m 앞에 공을 붙여 버디를 하고 그때까지 알뜰하게 쌓아 놓은 스킨스를 다 챙겨 가고 말았다.

내기에 졌으니 정보라도 얻을 심산인지 동반한 사장이 질문을 했다.

"우리같이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놀이가 좋아요, 휴식이 좋아요?"

"아, 적정 각성이론이란 게 있죠. 너무 늘어진 사람은 놀아서라도 각성 수준을 높이는 게 좋고, 너무 긴장한 사람은 놀이보다는 휴식이 좋죠. 스트레스 푼다고 해외에 나가 무제한 라운드하면 각성 체계가 오히려 망가집니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여가 인프라와 여가 정책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처럼 누구든지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퍼블릭 골프 문화는 언제쯤 정착될 수 있을까.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나이스'를 외치면 분노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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