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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EZ 진입 때 상호통보" 한국 "독도 국제분쟁화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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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선(停船)하라!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수로측량선 두 척의 동해안 EEZ 침범이 임박한 가운데 20일 포항해경이 송도 앞바다에서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된 정선 깃발은 국제공통이며 정선명령을 어기면 나포 등을 위한 작전을 실시한다. 포항=조문규 기자

#오전 9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렀다. 반 장관과 일본 대사의 40분간 면담이 끝난 뒤 정부 관계자는 "이제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일본 후지TV가 긴급 뉴스를 보도했다.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21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다. 잠시 후 정부도 이를 확인했다. 야치 차관은 독도 긴장 사태가 발생한 뒤 일본 측 협상창구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우리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수로 측량 계획으로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20일 등장한 새 장면이다. 반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일본 대사를 만나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리 입장을 강하게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한.일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협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일본 측 반응도 비슷했다. 이번 사태를 일본 측에서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비공식 접촉을 하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협상 중에는 측량선이 조사 활동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얘기도 흘렸다. 실제로 동해 쪽 사카이(境) 외항에 대기 중인 측량선 두 척은 이틀째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풍속 20~25m에 이르는 악천후도 배의 출항을 막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협상 움직임과 별도로 압박을 계속했다. 외교부는 이날 유엔 해양법상 강제분쟁 해결절차를 배제하기 위한 선언서를 18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낸 사실을 공개했다. 일본이 EEZ 논란으로 야기된 이번 사태를 혹시라도 국제재판소에 회부할 가능성에 대비해 차단막을 친 셈이다. 이 선언서로 일본이 국제재판소에 제소해도 우리는 이에 응할 의무가 없어진다. 선언서는 내는 순간 효력을 발휘한다.

◆ 협상 쟁점 뭔가=한.일 양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협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일본이 제안한 네 가지 중 EEZ 진입 때 상호통보하는 제도를 뺀 세 가지에 대해선 정부도 유연한 입장이다. 상호통보제의 경우 정부는 독도 문제의 국제 분쟁화를 촉발할 수 있는 만큼 고려의 여지가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해저 지명의 등재 시기에 대해 반 장관은 "우리의 권리"라면서도 "적당한 시기에 추진할 수 있다"고 해 절충 여지를 남겼다. 일본이 해저 지명 등록을 선점한 만큼 국제기구에서 우리 뜻을 관철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학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감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측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완전히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변수는 남아 있다. 일단 반 장관은 오시마 대사와의 면담에서 우리 측 입장을 충분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치 외무성 차관의 방한 결정은 이에 대한 반응인 셈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외교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커진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 여지는 넓어졌지만 일본의 태도 여하에 따라 절충 과정이 의외로 길어질 수도 있다"며 "21일 회담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영해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200해리(1해리는 1852m) 안의 모든 자원에 대해 연안국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유엔해양법상의 수역이다. 유엔해양법 협약은 1982년 채택돼 94년 11월 발효됐다. 이 협약은 연안국이 EEZ에서 어업자원과 해저 광물자원을 탐사.개발.보존.관리하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다. 연안국은 바다의 파도나 조수 간만의 차이, 바람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탐사할 권리, 해양의 과학적 조사, 해양 환경 보호에 관한 관할권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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