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수혈 환자 늘어나는데 30대 이상 헌혈, 한국 29% 일본 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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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시에 사는 임종근(60)씨는 8일 생애 553번째 헌혈에 나섰다. 헌혈 참여만 40년째다. ‘가진 건 없어도 이웃을 돕고 싶다’고 시작한 게 어느덧 습관이 됐다. 지금도 한 달에 두 번 이웃을 위해 피를 내준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 마라톤에 꾸준히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헌혈할 때마다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다. “헌혈의 집에 가면 젊은 사람만 보여서 안타까워요. 주변에 헌혈을 권유해도 다들 손사래 치죠. 40대, 50대 올라갈수록 헌혈을 더 안 하는 거 같아요.”

학생·군인 등 젊은 층 위주 벗어나 #중장년층이 적극 참여할 수 있게 #직장인 단체헌혈 권장법 추진

혈액 부족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전체 국민 대비 헌혈자를 보여주는 ‘헌혈률’은 2014년 6.1%에서 지난해 5.7%로 내려갔다. 헌혈하는 사람이 2014년 305만여명에서 지난해 292만여명으로 줄은 반면 혈액을 쓴 노인은 2012년 32만명에서 2016년 41만명으로 증가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헌혈이 주는 이유는 헌혈 연령층이 학생·군인 등의 젊은층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헌혈 인구 중 10~20대 비율이 71%, 30대 이상은 29%다. 일본은 30대 이상 헌혈 인구(2016년)가 78.4%, 대만은 67%이다.

휴가철·방학만 되면 헌혈 참여가 주춤해진다. 2001년 이후 17년째 초저출산(합계 출산율 1.3명 이하)이 계속되는데다, 혈액의 주사용자인 노인은 급증하고 있어서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10일 오전 경기 안양시 헌혈의 집은 ‘헌혈하는 당신 자랑스럽습니다’ 등의 문구를 내걸고 헌혈을 독려했지만 1시간 넘게 찾는 이가 없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학교에 헌혈하러 나가보면 학생 수가 줄어든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30대 이상 중장년층이 헌혈을 덜 하는 이유는 헌혈할 만큼 건강 상태가 안 좋은 인구가 많은 데다 인식이 잘 안 돼 있어서다. 20년 넘게 헌혈한 적 없다는 박모(51·부산광역시)씨는 “헌혈이 좋은 일이긴 한데 나이 든 사람이 하려니 좀 꺼려진다”고 말했다. 임종근씨는 “또래 얘기를 들어보면 직장 생활 등으로 술을 많이 먹거나 피곤하니 ‘내 피는 별로야’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급히 헌혈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 추세가 이어지면 피가 모자라 수술을 못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병원에서 수혈량 조절 등 환자 혈액 관리를 체계화하고 헌혈 교육을 강화하며 직장인 근무 시간에 맞춰 헌혈의 집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혈 문화가 정착된 호주에선 주중 일과 시간에 헌혈할 경우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지난 4월 30대 이상 헌혈 인구 비율을 2022년 42%까지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은 중장기 대책을 내놨다. 김명한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은 “혈액 수급이 안정되려면 전 연령층에서 고루 헌혈해야 한다. 직장 단체 헌혈을 권장하는 법률을 만들고 생애 첫 헌혈자를 위한 지원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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