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시민의 제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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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앙 경제 신문 오홍근 사회 부장 테러 사건 수사가 군이라는 벽에 부딪쳐 원점을 맴돌던 23일 오후. 독자들의 의혹 섞인 전화가 밀려오던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에 「따르릉…」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요즘 오 기자 테러 사건에 매스컴 보도가 방향을 못잡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단서를 갖고 계십니까.』『…범행 차량 번호는 정확합니다. 정보사의 서울 북부에 있는 특수 임무 부대를 유의해 보기 바랍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였다. 『누구의 소행인지도 알고 있습니까』
『…범행 팀장은 그 부대 박철수 소령입니다. 하사들을 동원했고, 출퇴근 시간에 목격자를 부대 부근에 잠복시키면 범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박 소령은 본 대장인 이모 준장과 ROTC 선후배로 가까운 사이이기도 합니다』 의혹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박 소령 등이 수사에 대비해 엉터리 서류를 만들어두고 있으며 범행은 위로부터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너무도 구체적이어서 거의 확실한 정보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제보 내용은 곧 국방부에 전달됐다.
이틀 후 25일 군은 바로 박 소령 등 4명을 범인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용기 있는 젊은 시민의 고발 정신이 거둔 빛나는 정의의 승리. 시민의 사회 감시 역할이 민주화의 받침돌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익명의 제보자는 26일 다시 전화를 해왔다. 『한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제보를 했을 뿐입니다. 남은 흑막을 다 밝혀 내주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불의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됩니다』 젊은 시민의 신념에 찬 목소리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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