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법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자체 해결 가능성 첫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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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 권한 남용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고발까지) 모두 고려하도록 하겠다.”(지난달 28일)
“원칙적으로는 법원 내에서 해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8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길 ‘멘트’가 열하루 새 미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을 검찰에 수사의뢰할지를 놓고서다. 김 대법원장은 8일 출근하면서 “이번 사태를 사법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법부의 자체 해결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다만 “검찰 수사는 필요 없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기본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뾰족한 해법이 없는 게 문제다. 사법부는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전국 판사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둘로 쪼개졌다. 소장파들은 “고발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중견급 이상 판사들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견을 모았다.

특히 고등법원 판사회의(4일), 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5일)에 이어 법관 경력 30년 이상의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법원장 회의에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에 대해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특별조사단의 결론을 존중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추가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도 간담회 자리에서 검찰수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는 데 동의했다. 민 법원장은 인권법연구회 전신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국회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보다 검찰 수사가 더 부적절하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법원 안팎에선 이같은 사법부의 분열 양상을 지켜본 김 대법원장이 “좌고우면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 초 고등부장으로 승진한 판사들과 가진 식사자리에서만 해도 “상반기 내로 사태를 마무리하고 좋은 재판 등 내부 개혁에 힘쓰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수사로) 확대시킬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복수의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특별조사단(3차 조사) 발표를 전후로 김 대법원장의 입장이 변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의 인사모(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 인사들이 김 대법원장에게 검찰 수사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안다”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이들을 무시할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조단 결정을 뒤집고 검찰 수사를 시사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수사의뢰나 고발을 하더라도 추가 혼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재경법원의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스스로 고발한 사건을 재판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데,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 자체가 의심받을 수 있어 어떤 결론이 나와도 국민이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특별재판부’를 꾸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적으로 가능하지만실정법 상으론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사법부의 구성과 법관의 임명은 헌법상 규정인데다 독립적인 재판부를 구성하려면 국회가 특별검사법처럼 특별재판부법을 먼저 입법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검찰도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가능한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한 고위급 간부는 “재판 거래 의혹 수사는 사실상 기존의 재판 결과를 뒤집는 파기환송심적 성격이 있을 수 있는데 수사 기관이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전국 법원은 8일에도 의견 수렴을 이어갔다. 이날 서울동부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행정법원에서 직급별 회의가 열렸다. 법원노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11일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여기서도 검찰 수사로 의견이 모아지면 김 대법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판사들도 주목하고 있다. 수적으로는 젊은 판사들의 의견이 많을 수 있지만 사법부 고참 판사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호진ㆍ문현경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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