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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 씨름 살리려 K-1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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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씨름을 하고 싶었다. 상대의 땀냄새를 맡고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머리싸움과 힘싸움을 하다 순간적으로 승부를 내는 씨름의 매력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이적도 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매일 술을 먹고 방황했다. 정들었던 샅바를 풀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어 6월 3일 K-1 월드그랑프리 서울대회에 출전한다.

김동욱(29). 1m93㎝에 165㎏의 거인. 2003년 설날장사를 지낸 민속씨름 백두급의 강자였다. 천하장사 출신으로 격투기 선수가 된 최홍만(26)과 같은 경로를 걷고 있다. 그래서 '제2의 최홍만'이라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씨름판에 환멸을 느끼고 "미련이 없다"며 매몰차게 떠난 최홍만과 달리 그는 "나는 지금도 씨름인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씨름인"이라고 강조한다.

다소 험악한 인상과 달리 그는 매우 진지하다. 소속팀인 신창건설씨름단이 씨름연맹과의 분쟁으로 대회를 거부하고 결국 해체되는 바람에 씨름판을 떠나야 했지만 씨름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그가 이종격투기를 선택한 것도 씨름을 알리기 위해서다. 샅바를 차고 경기에 출전, 씨름선수 출신임을 강조하고 씨름 기술을 많이 써서 씨름을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돈을 많이 벌면 씨름선수를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동욱은 천하장사를 못 해봤다. 하지만 힘은 말 그대로 '천하 장사'다. 허벅지가 38인치, 상박 둘레가 21인치나 되며 넘치는 힘 때문에 붙은 별명이 '백곰'이다. 팀 숙소 입구에 불법 주차된 1t트럭을 김동욱이 들어서 치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씨름판에 전해진다. 그는 "트럭 전체를 든 것은 아니고 적재함 부분을 들어 몇 걸음 옮긴 것일 뿐"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훈련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지만 김동욱에게서 제법 파이터 냄새가 난다. K-1의 다니가와 프로듀서는 "최홍만보다 기량이 낫다"고 평할 정도다. 태국 무에타이 도장에서 3개월가량 땀을 흘렸고, 로킥(상대의 다리를 차는 기술)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가 시퍼렇게 멍들도록 방망이로 맞았다. 언젠가 최홍만과 맞대결이 성사되면 재미있을 것이다. 씨름판에서 김동욱은 최홍만과 1승1패를 기록했다.

성호준 기자<karis@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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