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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로 물 위를 달리고 산을 넘다, 가속 페달을 안 밟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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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27일 포르투갈 남부 파로 공항 입구. 재규어랜드로버가 만든 전기차 '아이페이스(I-PACE)' 20여대가 줄지어 섰다.
아이페이스는 '브리티시 럭셔리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재규어와 4륜구동 SUV 전문인 랜드로버가 한 회사가 된 지 16년만에 내놓는 첫 전기차다.
지난 3월 신작 공개 이후 관심이 높아지자 재규어랜드로버는 글로벌 미디어를 초청해 이틀간 드라이빙 체험 행사를 열었다.

세단의 우아함에 SUV의 실용성, 스포츠카 성능  

 육각형 무늬 그릴에 재규어 마크가 선명한 전면 디자인에서는 세단의 느낌, 육상선수의 히프처럼 뒷바퀴 위로 트렁크가 날렵하게 올라앉은 측면 모습에서는 SUV 느낌이 강했다. 재규어의 이안 칼럼 디자인 디렉터는 "재규어의 우아함, SUV의 실용성, 스포츠카의 성능을 전기차로 구현한 차"라고 설명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 시장에 전기라는 경제성까지 갖춰 뛰어든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자 '딩동'하는 낮은 신호음과 함께 계기판이 켜진다. 소음 속에서라면 계기판이 켜진 걸 보고야 시동이 걸린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재규어랜드로버가 내놓은 전기차 아이페이스의 도로 주행 모습.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재규어랜드로버가 내놓은 전기차 아이페이스의 도로 주행 모습.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전기차 운전자들의 우려를 덜어줄 장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계기판에는 현재 배터리 충전 상태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디지털 숫자로 눈에 잘 띄게 디자인됐다. 내비게이션도 목적지를 설정하면 그곳까지 가고 나면 배터리 충전량이 몇% 남을지를 숫자로 보여줬다

주행 성능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가속 페달을 밟자 예비 동작이나 지체 시간 없이 곧장 속도가 붙었다. 제로백(시속 0㎞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 시간)은 4.8초. 내연기관 차량 중에서도 고성능 차종과 유사한 수준이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곧바로 속도가 줄어든다. 시속 100㎞로 달리다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완전히 떼자 약 5~6초만에 차가 정지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사용하지 않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밟는 정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원페달' 운전이 가능했다.

산악에서 정속 주행 버튼 누르고 게임하듯 운전

고속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 주행을 시작했다. SUV의 특성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수심 25㎝의 개천이 나타났다. 입수 전 센터페시아에 붙은 버튼을 누르자 차체가 높아졌다. '전기차와 물은 상극'이라는 속설은 잊어도 될 듯 했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 달리는 느낌은 다른 SUV와 다르지 않았다. 아이페이스는 최대 50㎝ 깊이의 도강 능력을 갖췄다. 이 깊이라면 차체 바닥에 깔린 배터리 부분이 수면 아래로 들어갈 정도지만 방수와 배수처리로 안전성을 높였다.

아이페이스는 50cm 깊이의 물을 건널 수 있는 도강 능력을 갖췄다. 물길에서 SUV과 유사한 성능을 발휘한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아이페이스는 50cm 깊이의 물을 건널 수 있는 도강 능력을 갖췄다. 물길에서 SUV과 유사한 성능을 발휘한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물길을 지나 산악길을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도로라는 호주 발드윈스트리트(경사 19도) 보다 더 깎아지른 듯한, 경사 38도 산악길을 올랐다. 일부 구간에서는 앞 유리 전체에 하늘만 들어올 정도로 급경사여서 아찔했다. 길이 어느 쪽으로 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에 '360도 카메라' 버튼은 큰 도움이 됐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내 차의 모습과 길의 모양이 한눈에 화면에 들어왔다. 마치 게임을 하듯 화면을 보면서 운전대를 조작하면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가파른 길을 가속페달을 전혀 밟지 않고 올랐다는 점이다. 내비게이션 아래 정속주행(ASPC) 버튼을 누르면 시속 얼마로 주행을 유지할지 간편하게 정할 수 있다. 시속 13㎞로 정하자 아무리 가파른 구간에서도 아이페이스는 시속 13㎞로 꾸준히 출력을 내며 올라갔다. 내리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페이스는 전기차이지만 산악 주행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은 포르투갈 남부 파로지방의 산악을 달리는 모습.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아이페이스는 전기차이지만 산악 주행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은 포르투갈 남부 파로지방의 산악을 달리는 모습.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한번 충전에 480㎞, 40분 만에 80% 충전 

좌우로 번갈아 급회전하는 고갯길에서 차체의 쏠림이 심하지 않았다. 배터리가 차체 중앙 바닥에 넓고 얇게 깔렸는데 이 무게만 640㎏에 달했다. 차량 전체 무게의 3분의 2가량이다. 저중심 배치된 배터리가 차체 쏠림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페이스는 '전기차 2.0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전기차는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세컨카의 이미지가 강했다. 아이페이스는 한번 충전에 480㎞를 달린다. 일반 가정용 충전으로는 13시간 걸려야 완전 충전을 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현재 보급 중인 100kW DC 충전기를 사용하면 40분 만에 80% 충전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하반기 중 출시 예정이며 가격은 약 1억1000만원.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파로(포르투갈)=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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