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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녹음·DMZ 체험 외국인 북적 … 관광벤처 튀어야 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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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호 15면

‘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홍보 문구는 관광벤처의 막강한 무기다. 지난달 23일 한국을 찾은 프랑스 한류 팬(왼쪽 사진)이 킹스튜디오에서 제작자의 지도를 받으며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사진 각 업체]

‘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홍보 문구는 관광벤처의 막강한 무기다. 지난달 23일 한국을 찾은 프랑스 한류 팬(왼쪽 사진)이 킹스튜디오에서 제작자의 지도를 받으며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사진 각 업체]

“서인국 박효신이 녹음한 스튜디오에서 K팝 스타처럼 노래해보세요”

한국 강점 살린 관광 #299만원에 뮤직비디오까지 제작 #김신조 청와대 침투 루트 투어도 #특정국가 편중 없어 #사드 한파 때도 별 영향 안 받아 #덤핑 오명 씻고 관광 경쟁력 키워 #여행업계의 문제점 #한복 빌려주는 업체 난립하는 등 #잘되는 아이템 베끼기로 공멸도

킹스튜디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영어로 이런 안내문이 뜬다. 서울 압구정역 인근에 있는 음악 전문 업체, 뮤직킹이 운영하는 이 스튜디오는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음반 작업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더 잦다. K팝에 빠진 외국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프로 가수처럼 녹음해보는 ‘로망’을 실현해보기 위해 찾기 때문이다. 체험객은 일반 관광객에서부터 출장 중 잠깐 짬을 낸 출장자, 한류 스타일의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까지 다양하다. 킹스튜디오 관계자는 “하루에 수용할 수 있는 한도가 최대 6건인데 평일에도 4건 이상은 예약이 돼 있다”고 말했다.

체험자는 녹음실에서 진짜 가수처럼 제작자의 지휘로 한 소절씩 부르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를 끌어낸다. 이후 후반 작업을 거치면 그럴듯한 음원이 완성된다. 이용 가격은 1시간짜리 골드 상품(11만8000~17만8000원)부터 녹음을 한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류 스타처럼 꾸미고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는 299만원 상당의 노블레스 상품까지 다양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이 풀리면서 유커(遊客)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동시에 덤핑 여행 상품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한국 관광산업의 체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덤핑 여행 상품은 여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의 여행 상품을 판 뒤 각종 인센티브로 부족분을 챙긴다. 한국 관광 산업의 체질을 악화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가운데도 톡톡 튀는 콘텐트를 앞세운 관광 벤처 기업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체험을 찾아내 상품화한 경우 경쟁력이 막강하다. 킹스튜디오는 지난해 초 사드 한파가 닥치기 직전인 2016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주요 고객층이 중국 단체 관광객이 아닌 대만과 일본의 열성 한류 팬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 업체 매출의 60%는 외국인 관광객 녹음 서비스에서 발생한다. 노광균 뮤직킹 대표는 “지난해는 99만원 상품이 가장 고가의 상품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 299만원짜리 프로그램을 신설했다”며 “최근 일본 관광업체와 양해각서(MOU)를 맺어 본격적으로 일본 관광객을 유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5년차 관광벤처 생존율 61%로 높아

지난 3월 ‘DMZ 스파이 투어’를 이용한 미국 관광객. [사진 각 업체]

지난 3월 ‘DMZ 스파이 투어’를 이용한 미국 관광객. [사진 각 업체]

‘잘 나가는 관광벤처’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국가 편중이 없다는 점이다. 한·중 관계 악화와 같은 외부 요인에 갑자기 손님이 끊어질 위험부담을 최소화했다. 한국 관광공사에 관광벤처로 선정된 업체는 창업 5년 차 생존율이 61%로 꽤 높은 편이다. 일반 벤처기업의 경우 5년 차에 생존한 비율은 27% 남짓이다. 한국관광공사 함경준 관광기업지원 실장은 “한국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콘텐트를 제공하거나 체험을 제안한 관광 벤처는 사드 한파 영향을 받지 않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고 국가 관광 경쟁력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여 주었다”고 설명했다.

‘DMZ 스파이 투어’는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점을 내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관광벤처는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침투 사건을 모티브로 투어를 구성해 메인 상품으로 팔고 있다. 체험자의 숙소에서 출발해 임진각~비무장지대~청와대 인근 전투 기념비~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이용료는 1인당 158달러(약 17만원)에 달한다. 2014년 사업 시작 이래 매년 300%씩 이용자 수가 증가해 지난해는 외국인 관광객 약 3000명이 이용했다.

인기 비결은 지구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 남북 관계, 군사 문제에 정통한 가이드 12명을 전속으로 쓰고 있는 점도 이 업체의 자랑이다. 상세한 설명으로 글로벌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점도 좋다.

DMZ 스파이 투어의 이경윤 대표는 “프로그램 이용자의 60%는 미국인이고 영국 등 유럽에서도 많이 온다”며 “최근 남북 관계에 세계 이목이 쏠리면서 국내에서도 문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도 국방부의 허가가 필요하고 가이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는 등 진입 장벽이 있어 우리만 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공항서 숙소로 짐 배송 IT 벤처도

벤처 기업 생존율

벤처 기업 생존율

정보기술(IT) 기반 관광 벤처도 활약 중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관광객을 위해 공항에서 짐을 숙소로 배송해주거나 보관해주는 서비스 ‘세이팩스’를 운영하는 아이트립도 이 중 하나다. 2013년 창업한 이 업체는 인천공항 외에도 김포공항, 서울역과 홍대 입구역에 센터를 두고 성업 중이다. 여행객 입장에서 도착과 동시에 온라인이나 현장에서 짐을 접수하고 가볍게 관광을 시작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신 인프라와 고도로 발달된 택배서비스가 만나 실현 가능한 서비스다.

물론 모든 관광벤처가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여행을 많이 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창업하지만, 여행업계에 대한 지식이나 인맥이 없어 실패하는 사례도 상당하다. 더 큰 문제는 고질적인 베끼기다. 잘된다 싶은 아이템이 나오면 너도 나도 뛰어들어 공멸하는 것이다. 서울 경복궁 등 고궁 인근에서 한복 빌려주는 서비스 업체의 난립과 저가 경쟁이 가장 최신의 사례다. 관광벤처포럼 윤지환 회장(경희대 호텔관광대학교수)은 “유사업체가 난립하면서 잘 운영하던 곳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일부 업체는 국적 불명의 저가 옷을 빌려 주는 등 한복 체험의 만족도를 낮추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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