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국회회담 박준규 대표단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2년8개월 동안 중단됐던 남북대화가 19일 남북국회대표준비회담을 계기로 재개된다.
우리측 대표단장인 박준규 민정당 고문을 가까스로 추적하여 그가 묵고있는 S호텔 1105호실 문을 두드렸다.
박 단장은 7선 의원을 거치면서 IPU (국제의회연맹) 단장을 20차례 가까이 맡아 북한대표들과도 자주 접촉해 북한대표 등을 다뤄본 경험이 깊다.
-우선 이번 회담에 임하는 자세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민주화된 한국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저쪽에서는 우리대학생일부가 시끄럽고 하니 우리 쪽이 지리멸렬할 것이라 짐작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오판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지난 85년 여름에도 남북국회회담이 있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쪽이 우선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남북회담 역사를 더듬어 보니 우리 쪽도 너무 딱딱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위 4당 체제하에서의 지금은 회담에 임하는 준비부터 완전히 달라졌어요.
정부가 국회회담에 영향을 미치려하지도 않습니다. 거침없이 각 당의 대표끼리 만나 결론을 냈습니다.』
-우리 쪽의 변화만큼 저쪽도 이제는 좀 바뀌었을까요.
『그래요. 양쪽이 모두 정부수립 40년이 넘었으면 이제는 좀 바뀌어야지요.
북쪽이 군축·뷸가침 등을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스스로 먼저 개방을 전제하지 않고는 무의미합니다.
소련이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방정책을 취하고서야 미국과 핵무기감축 등을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을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이십니까.
『각 당의 대표라는 사람들로 구성된 만큼 북쪽에 우리의 민주화된 모습을 회담을 통해 보여주겠습니다.
각 대표가 사전 시나리오 없이 각자의 의견을 그대로 개진토록 분위기를 만들겠습니다. 물론 이슈마다 서로 다른 의견도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북쪽에 우리측의 분열상만 노출시키는 결과가 안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저쪽이 오판을 하면 안되지요. 자유·민주·평화 등 우리의 가치를 버리고 이질적인 가치에 동조한다고 보면 잘못입니다.
회담을 앞두고 김대중·김영삼 총재도 만났고 오늘은 어제 귀국한 김종필 총재를 만나려 합니다.』
양 김씨를 만나보니 큰 의견차이가 없었습니다. 모두 근본목적은 같지 않습니까.
단지 표현이나 뉘앙스의 차이 정도였습니다.
대학생들이 시끄럽다고 한국이 위기의 연속으로 본다면 그들은 2차대전시의 일본과 같은 우를 범하는 꼴이 됩니다.
미국의 평화무드와 다양성을 약점으로 알고 달려들었다가 큰 코 다치지 않았습니까.
학생들의 데모가 있던 날 여의도에서는 기독교인 10만명이 모인 복음집회가 열렸습니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강점이지요.』
-저쪽은 연석회의를 주장하고 의제도 남북 불가침선언 등으로 잡고 있는데 우리쪽 입장은 무엇입니까.
『회담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양쪽이 만나 서로 얘기해 보면 좋은 방안이나 올 겁니다.
다만 양쪽 모두가 너무 명분과 말싸움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대학들이 남북학생회담을 주장하는데….
『8·15때 데모하는 모습을 TV로 보았는데 모두 얼굴이 환합디다. 옛날처럼 악착스럽게 보이지가 않아요. 우리 정치인들을 믿고 있다는 증거로 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이 쏟은 정열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또 그들 마음에 구김살이 안 가도록 우리가 앞장서야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회담의 전망을 말씀해 주시지요.
『양쪽의 선택이 뻔한 만큼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든 북한이 올림픽에 참석하도록 권유해 보겠습니다.
양쪽이 발상을 전환하여 투쟁이 아니고 함께 민족의 공동가치를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회담에 임한다면 잘 풀릴 것으로 믿습니다.』

<문창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