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라크 추가파병의 전제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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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이라크 치안유지를 위한 한국군의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그 수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져 국론분열이 심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아직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국론분열적 논란은 정부의 결정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추가 파병을 국제사회에 요청하기에 앞서 국제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선결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최근 유엔안보리에 미국 주도 하의 이라크 평화결의안을 제출했다. 이에 맞서 프랑스와 독일은 유엔 주도의 이라크 평화결의안을 제출했다. 미국은 적어도 상충하는 두 결의안을 절충해 하나의 결의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동맹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이라크의 치안확보 및 전후복구를 위한 평화유지군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전의 성격과 그 수행과정을 고려하면 보다 명백해진다. 이번 이라크전은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지만 유엔의 결의를 얻지 못해 사실상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중국 등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반대했다. 그로 인해 동맹국 간 분열과 갈등이 커졌고 미국 내에서도 찬반여론이 비등했던 것이 아닌가.

이 때문에 한국 내에서도 격렬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은 국내의 거센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정신에 입각해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병대와 의료부대를 파병했다.

미국이 처한 어려운 입장은 이해한다. 동맹이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또 미국이 동맹의 정신에 따라 북핵과 주한미군 이전 문제에 성의를 보이고,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추가 파병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도 일방적으로 요청을 해선 안 된다. 미국은 동맹국인 우리 정부가 격한 반대여론에도 더 큰 국익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확고한 명분을 위해 운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무엇보다 유엔과의 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유엔의 이름으로 평화유지군이 창설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정부도 국익과 한반도의 안보정세, 국제사회의 평화유지 명분 등을 종합 고려해 추가파병 용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