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물갈이론 오기 싸움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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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67.밀양)의원.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 패배 직후 "명예롭게 은퇴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천안 연수원에서 가진 지구당 당원들과의 단합대회에서 "내년 총선에 꼭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 '5,6공(共)출신 물갈이론''60세 이상 물갈이론' 등이 나오면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70대의 나오연(羅午淵.양산)의원도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미국과 일본 의원들의 평균나이가 우리보다 훨씬 많다. 우리를 함부로 괄시하지 말라"며 은근히 핀잔을 준다 한다.

의원총회에서 내년 총선 때 불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던 유흥수(柳興洙)의원도 "물갈이 압박에 굴복해 쫓겨나는 모양새라면 그런 수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물갈이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물갈이와 관련한 온갖 주장이 난무하면서 노(老).장(長).청(靑) 사이에 세대갈등은 더욱 각을 세우고 있다.

우선 고령의 민정계 중진들을 내몰려는 소장파의 압박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 민정계 출신인 최병렬(崔秉烈)대표가 "이젠 그만하라"고 했지만 30~40대의 초.재선 의원들은 앞으로 추석민심까지 내세워 물갈이론을 확산시키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이회창(李會昌)전 총재의 젊은 보좌진 등 정치신인들도 적극 가세하기로 해 주목된다.

李전총재의 보좌역을 지낸 이명우씨 등 30~40대의 신인 30여명은 최근 '총선행동그룹'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李 전총재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주문했던 당의 환골탈태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당 개혁을 위해 적극 활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체 여론조사 발표 등을 통해 물갈이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비슷한 움직임은 물갈이론의 표적인 영남에서도 일고 있다. 부산지역 출마를 검토 중인 김정훈(金正薰) 당 대표 비서실 부실장은 "최근 부산.경남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타진 중인 30~40대 변호사들이 현지에서 '물갈이 바람'을 일으킬 목적으로 모임 결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장파나 신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중진들의 반발도 강해지고 있다. 당초 "후진들을 위해 물러나겠다"던 중진들이 5~6명 가량 됐으나 물갈이론이 나오면서 "용퇴한다"는 목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소장파의 공세에 감정이 상한 데다 자신의 명예를 염두에 둔 때문이다.

하지만 소장파에게선 다른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노무현(盧武鉉)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중진들은 '우리가 나가도 이긴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진들의 완강한 버티기가 계속될 것이며, 그로 인해 소장파와의 충돌은 공천이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이 의원은 전망했다.

남정호.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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