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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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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뒷모습은 속일 수 없다. 아무리 두껍게 화장한들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서 뒷모습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익숙해졌음을 뜻한다. 얼굴을 마주하면 표정과 몸짓에 진실은 멀어진다. 뒷모습은 너무 정직해 슬프다. 프랑스의 에두아르 부바(1923~99). 뒷모습 사진으로 유명한 거장이다. 독학으로 배운 흐릿한 그의 흑백사진은 피사체를 뒤에서 응시한다.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미셸 투르니에는 그의 사진에 이렇게 썼다. "…뒤쪽이 진실이다."(사진 에세이집 '뒷모습')

혼다차를 세운 혼다 쇼이치로(本田宗一郞). 1973년 10월, 후배들이 수랭식 자동차를 개발하자 그는 공랭식 자동차에 대한 집착을 깨끗이 접었다. 평생 동반자인 후지사와 다케오(藤澤武夫) 부사장의 어깨를 툭 쳤다. "이쯤에서 어때. (혼다)" "그렇게 하지요.(후지사와)" "행복했어." "저도요. 고마웠습니다." "나도 감사해. 괜찮은 인생이었어." 두 사람은 말없이 일어났다. 다시는 회사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절정의 시기에 아름답게 물러나는 이 장면은 일본 기업사의 신화로 남았다. 지금도 혼다차의 기업DNA에 깊이 각인된 전통이다.

조선 효종 시절 영의정만 세 번을 지낸 정태화. 병자호란 때 도원수가 달아나자 패잔병을 수습해 부러진 화살과 돌로 싸운 인물이다. 하루는 그가 즐기던 악기 소리가 집 담장을 넘었다. 대사간이 그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때부터 정태화의 사직상소가 시작됐다. 그는 임금에게 무려 서른일곱 번이나 물러나기를 청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그는 기로소(耆老所.퇴직한 나이 많은 신하를 예우하는 기구)로 물러나면서 "남들이 머물라 할 때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올 들어 숱한 인물들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총리는 황제골프로 낙마했다. 공천 뇌물은 야당 중진 의원 2명에게 무대 뒤를 가리키고 있다. 현대차를 겨눈 검찰의 수사 칼날도 심상찮다. 벌벌 떠는 대기업과 고위 경제관료 출신들도 한둘이 아니다. 당당하게 검찰청에 들어갔다가 모두 고개를 떨어뜨리고 나온다. 한결같이 초라하고 씁쓸한 뒷모습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분분한 낙화(落花)/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의 '낙화'). 하물며 꽃도 떨어질 때를 알거늘. 생각하니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의 뒷모습은 과연 어떨지. 부바라면 그 뒷모습에서 어떤 진실을 잡아줄지.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