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단체대표까지 참가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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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국회회담」 에 대한 지난 1일의 우리측 제의에 대해 북측이 9일 보내온 답신내용은 이번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전향적인 자세를 역이용, 그들의 기본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보여진다.
북한측 제의를 언뜻 보면 △그 동안 예비접촉 없이 막바로 본 회담부터 하자던 북측이 물론 본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예비회담」의 성격을 띤 접촉을 한 후 본 회담을 하자고 주장하고 △본 회담의 일시·기간·장소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일보 진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측의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다는 게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북측이 이번 양형섭의 서한을 통해 정당·단체대표들과 각계인사들의 참가를 강조한 점이다.
북측은 『남북국회 회담이 제한된 몇 사람의 대표회담을 염두에 두고 다른 정당·단체대표들과 각계인사들을 배제하는 것이라면 현실에 부합되는 적중한 회담방식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북측은 지난달 20일과 26일의 대남서한에서도 정당·사회단체 대표의 참석을 시사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일 뿐 남북국회연석회의 개최를 강조했던 것인데 이번에는 정당·단체대표들까지 포함시키자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늘 주장해왔으며 우리측이 반대하고 있는 「남북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열자는 주장인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당국자는『남북국회회담이냐, 남북국회연석회의냐에 대한 매듭도 짓기 전에 불쑥 정당·단체대표들의 참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남북국회회담 자체에 대해서도 성의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 이라며 『이는 그 동안 우리측이 전향적으로 나가자 회담을 무산시킬 수 있는 고리를 건 것』 이라고 분석했다.
즉 회담을 깼다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회담성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예비접촉의 시기를 17일로 잡은 점, 의제에 대한 인식, 과거에 비해 회신을 늦게 한 점등도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북측이 가장 신경을 쓰고있는 관심사항은 8·15남북학생회담이다.
이를 위해 북측은 대대적인 군중집회를 열고 남북학생회담의 관철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게 안보관계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17일로 날짜를 잡은 것은 학생회담 귀추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를 담고있다고 관측된다.
의제와 관련, 북측은 이번 서한에서 우리측이 의제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제의에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며 불가침 문제와 올림픽문제로 기정사실화해 버렸다.
우리측이 지난 1일의 제의 때 의제를 한정하지 않은 것은 「예비접촉 때 논의하면 된다」 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인데 북측이 이를 일방적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본 회담 참석범위에 대한 언급 없이 『쌍방이 협의할 실무절차라고 해야 장소·시일·판문점통과절차·신변안전·편의보장 문제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은 예비회담보다는 사실상 바로 그들이 당초 주장한 국회연석회의로 끌고 가자는 것으로 우리측의 예비회담제의를 형식으로 받아 들인데 불과하다.
어쨌든 공은 이제 다시 우리측에게로 넘어왔다.
이번 양의 서한으로 「국회회담」 을 둘러싼 양측의 「수 싸움」이 고비에 이른 셈인데 8·15남북학생회담문제의 처리가 얽혀있는 만큼 국회 측은 신중하게 대처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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