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여검사들 폭로 사건의 뒤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 데스크

조강수 사회 데스크

요 몇년 새 검찰이 한 ‘큰일’은 국정 농단 사건과 적폐 청산 수사다. 그 결과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동시에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비슷한 시기 남자 검사들은 각종 사고를 연달아 쳤다. 여검사들은 폭로를 했다. 사고와 폭로의 차이는 크다. 남검사들은 ‘주체적으로’ 사고를 쳤다. 김광준-김학의-진경준-우병우-안태근-. 이들은 가해자였다. 성·돈·주식으로 압축되는 인간의 욕망과 반대파 통제, 정권 유지 및 통치로 상징되는 권력의 속성과 관련해서다.

서지현-안미현 검사의 폭로는 용기있는 결단 #절차 밟은 뒤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민주주의

수단은 막강한 수사권력이었다. 때로는 교묘하고 은밀하게 거기에 기댔고, 때로는 대놓고 모질게 그걸 휘둘렀다. 폭로자는 대개 피해자다. ‘이대 나온’ 서지현·안미현 검사의 폭로는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 검사를 두고선 1호 검사였던 이준 열사 이후 두 번째의 진짜 검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안 검사의 폭로는 ‘수사 외압’과 ‘내압(수사지휘권 행사의 적절성)’이라는 검사 업무의 본질적 부분을 문제 삼았다. 조직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이들의 폭로는 검찰을, 국민 여론을, 정부를 움직였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선택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과 양부남 광주지검장이었다. 최초의 여성 검사장에 성희롱 피해 폭로사건 수사를 맡겼다. 불도저 스타일의 양 지검장에겐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의 전권을 줬다. 성역없는 수사가 기대됐다. 그러나 지난 4월 말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등 7명을 재판에 넘기고 종료된 수사에 대해 서 검사는 “조희진 조사단장은 (나에 대한) 사무 감사를 결재하며 검찰총장 징계에 관여해 실은 조사대상이 돼야 할 사람”이라며 “조사단 구성 때부터 인사 불이익에 따른 직권남용 수사 의지가 없었던 부실수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미현 검사 건에서도 피해자의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채용비리 수사단의 결과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안 검사는 2차 폭로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번에는 문 총장의 수사 압력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다 갑자기 채용비리 수사단이 “총장이 당초 공언과는 달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논란이 검란(檢亂)으로 번질 기세였다. 최종원 서울남부지검장과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이 채용비리 수사를 방해한 단서가 있어서 기소해야 한다는 게 수사단의 주장이었다. 자연스럽게 안 검사와 양 수사단장이 문 총장을 협공하는 형국이 됐다. 문 총장과 대검 반부패부 측은 당치 않다며 억울해했다. 검사들 입에서 “부당한 인권침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통음한 어느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재수사를 결정한 게 반부패부입니다. 문무일 총장이 취임 직후 중앙일보 등에 난 기사를 보고 지시해 대검 연구관들이 직접 춘천지검에 내려가 수사기록을 다 깠습니다. 그 결과 부실수사라고 판단해 재수사를 결정한 겁니다. 그런데 수사 방해라니요?”

희대의 ‘검찰총장 수사내압 의혹 사건’을 심리한 검찰 ‘전문자문단’은 19일 “수사 압력이 아니며 불기소가 타당하다”고 의결했다. ‘수사단의 오버’였다는 것이다.

한바탕 검찰을 휩쓸고 간 내분 쓰나미의 원인에 대해 검찰 고위직 인사가 말했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사실 관계를 오인한 데 따른 측면이 있죠. 안 검사는 재수사 때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구속의 결정적 단초가 된 국회의원 보좌관 조사 관련 수사보고서를 누락하고 영장을 이중 청구하는 등의 잘못을 했어요. 수사를 개인의 사유물로 착각한 거죠.”

문무일 총장은 취임 이후 검사들에게 ‘진언하라. 듣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이견도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고 했다. 누구든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서 검사와 안 검사는 이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열었다. 동료 검사들이 수사를 못 한다고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순리적 절차를 밟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다. 없는 것은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은 있다고 하는 게 법률가의 길 아닌가.

조강수 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