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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가 성장해야 지역 격차도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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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가 지역 간 불균형을 말할 때 인구, 대기업 본사, 금융거래, 조세수입, 주요 대학 등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을 흔히 지적한다. 이는 전국을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둘로 나누는 데서 벌어지는 오류다. 비수도권에 속하는 지역 간에도 불균형이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특정 시점의 지역 간 격차에만 주목하고 경제 전체의 성장이 지역 간 격차에 미치는 영향이나 각 지역경제가 성장하는 모습, 이른바 동태적(動態的) 성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한국 경제 전체의 성장과 각 지역경제의 성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자. 이를 위해서는 전국의 경제성장률과 지역 간 성장률의 격차(각 지역의 지역내총생산 성장률과 전국 경제성장률 간의 격차로 측정함)가 어떠한 분포를 보이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 간 성장률의 격차를 편차계수(표준편차를 지역 성장률의 평균치로 나누어 표준화한 지수), 상대범위(지역성장률 중에 가장 높은 성장률과 가장 낮은 성장률의 차이를 평균치로 나눈 것) 등 네 가지 지표를 활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86~2003년 전국 16개 도와 광역시 간의 성장률 격차와 전국 경제성장률 사이에 강한 역(逆)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전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지역 간의 경제성장률 격차가 줄어들고, 전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지역 간 격차가 늘어난다는 게 분석 결과다.

이는 지역 균형발전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전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거시경제 정책이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 간 불균형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훌륭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 된다는 의미다. 반대로 어떤 이유로든 전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지역 간 불균형이 확대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경제성장에 있어 지역과 전국 간의 관계를 보는 또 다른 방법은 지역의 성장에 무엇이 기여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①전국 성장이 지역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 ②전국의 산업구조 변화가 지역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 등 '전국 효과' ③지역 고유의 성장 요인 ④지역의 특화 산업이 지역성장에 기여한 정도 등 '지역 효과'의 네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이 방법으로 88~2002년 전국 시.도의 성장을 분석한 결과 가장 두드러진 점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국 효과가 지역 효과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특징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그 이후에 더 뚜렷해졌다.

지역 전체로 보든 지역의 개별 산업별로 들여다 보든 지역 경제가 전국 경제의 성장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역경제가 경제 전체의 성장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커진 것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지역과의 상호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경제정책을 펴거나 또는 중앙정부가 특정지역의 발전을 겨냥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 지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얘기다. 나아가 이 분석 결과를 전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지역 간 성장률 격차가 낮아진다는 점과 연결시키면 지역경제의 활력을 위해서도, 또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특정 지역을 겨냥한 정책보다는 경제 전체의 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경제성장률은 제조업.서비스업 간의 상대적 비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국이든 지역이든 마찬가지다. 이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에 생산성 증가율에 격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0~2004년 연평균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이 8.7%인데 서비스업은 1.4%에 그치고 있어 두 산업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의 비중이 클수록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88~2004년 제조업 비중이 클 때 전국 경제성장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경제도 같은 경향이 있다. 제조업의 비중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지는 지역들은 지역경제가 활력을 보인 반면 반대의 경우는 전국 평균보다 저조한 성장세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이 인위적으로 제조업의 비중을 높일 수는 없다. 지역별로 제조업이 발전하는 데 얼마나 적합한 여건인지는 정책 의도보다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입지조건과 자본.인력.기술 등에 의해 정해지고, 그 결과 지역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앙정부가 지역 격차 해소를 바란다면 수도권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규제 내지 촉진 정책에 집착하는 것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제조업체들이 국내에 남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지역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지역 균형발전정책도 필요하지만 전국 경제의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거시정책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개인 간의 소득격차를 축소시키고, 특히 빈곤층을 해소하는 데에는 경제성장률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점과 마찬가지다. 현 정부 집권 후 2년간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85%로 그 이전 두 정부의 연평균 7.14%(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제외)보다 현저하게 낮다. 이 같은 성장률 저하가 지속된다면 지역 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민경휘 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