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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탄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84호 34면

김하나의 만다꼬

뱃속의 근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수술 전 준비를 하는데, 아직 앳되어 보이는 간호사가 와서 정맥 주사를 놓겠다고 했다. 나는 팔뚝이 가는 편이고 핏줄도 잘 보이지가 않아 고심하는 게 느껴졌다. 아니, 그전에 처음 내 팔을 잡는 손길에서부터 언뜻 불안감이 들었다. 너무 조심스럽고 서툰 느낌. 앳된 얼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팔뚝을 한참 들여다보고 알코올로 닦고 톡톡 쳐보던 간호사는 팔뚝을 놓고 손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또 한참이 지났고 나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간호사는 “주삿바늘이 굵어서 아플 거예요”라고 말한 뒤 드디어 내 손등에 바늘을 꽂았다. 꽤 따끔했지만 고개를 돌리고 참았다. 그런데 아픔이 점점 더 커졌고 ‘어… 이건 상당히… 아아악!’ 하고 내적 비명을 지르는 순간 간호사가 “핏줄이 너무 가늘어서 찢어졌어요. 다시 놓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삿바늘을 뽑았다. 이 고통을 처음부터 다시 느껴야 한다니 무서웠다. 게다가 이번에도 성공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손등의 다른 핏줄을 찾으려던 간호사가 백지장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음, 저희 ‘정맥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사라졌다. 핏줄이 찢어진 손등은 꽤 아팠다.

조금 시간이 지나 ‘정맥 선생님’이 나타났다. 중년 여성이었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이름을 확인한 뒤 거두절미하고 양손으로 내 손목과 팔뚝을 탁 잡는데 아, 그 느낌은 잡혀보지 않으면 모른다. 수없이 많은 팔뚝을 잡아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안정적인 느낌. 이런 걸 ‘그립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맥 선생님’은 내 팔뚝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두어 번 치더니 내 공포감이 커지기도 전에 이미 주삿바늘을 꽂았다. 길고 굵은 주삿바늘은 내 혈관 속에 어느새 자리를 잡았고, 테이프로 고정하는 손놀림도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주삿바늘은 수술 과정을 포함 3박 4일 내내 팔뚝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한번 단단히 꽂힌 이 바늘을 통해 수액과 진통제와 수축제 등 수십 방의 주사제를 주입했다. 정맥주사는 수술의 아주 중요한 기초공사였던 셈이다.

수술은 잘 끝났다. 수많은 전문가가 내 수술에 참여했다. 내가 누운 침대를 입원실에서 수술실로 밀어준 분도 프로였다. 아무 데도 부딪치지 않고 부드럽게 코너를 돌았으며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기술도 뛰어났다. 집도의는 물론 마취과 의사도, 회복실 간호사도 모두 프로였다. 숙련된 동작으로 수술과 회복에 필요한 일들을 척척했다. 다시 말해 수없이 반복해 본 일이라는 뜻이다. 이게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들도 모두 한때는 초보였을 테니까.

오늘 아침, 초보자와 전문가의 주삿바늘 자국이 하나씩 남은 팔로 넘겨본 책에는 일본 승려 슌류 스즈키의 말이 있었다. “초보자의 생각 속엔 경우의 수가 많다. 전문가의 생각 속엔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 초보자는 그만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금 내겐 프로가 된다는 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한 후 웬만한 변수엔 능숙하게 대처할 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그 앳된 간호사도 수많은 팔뚝에 주사를 놓아보며 점점 프로가 되어 가겠지. 멋지고 고마운 일이다.

브랜드라이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힘 빼기의 기술』을 쓴 뒤 수필가로도 불린다. 고양이 넷, 사람 하나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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