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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배, 국민과 연금공단 직원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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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복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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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가입자 중에는 본인의 연금 보험료뿐 아니라 배우자·자녀·부모 등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경우가 있다. 전업주부 임의가입 문턱이 낮아지고, 자녀의 노후까지 부모가 챙겨주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본인 동의만 구하면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도 대납할 수 있다.

그런데 대납 제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부산에 사는 안모(57·여)씨는 “연금 보험료도 대신 내줄 수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요즘 수입이 없어서 보험료를 안 내는데 대납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실이 13일 연금 보험료 징수를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보험료를 고지받은 국민 431만4946명(연평균) 가운데 타인의 보험료를 대납한 경우는 0.25%(1만1250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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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관리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은 어떨까. 김 의원실에 따르면 5년간 연금공단의 전·현직 임직원의 13.8%(연평균)가 보험료를 대납했다. 일반 국민의 55배 넘는다. 배우자의 연금 보험료를 대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소득 없는 아내나 남편의 임의가입 보험료를 대납하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보험료 대납 규정이 없다. 건보공단·연금공단은 내부 지침에 따라 신분 확인 후 자동이체 방식으로 보험료 대납을 허용한다. 연금공단은 대놓고 보험료 대납 제도를 알리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공단 관계자는 “본인 납부가 원칙이기 때문에 대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긴 어렵다. 연금 제도를 잘 아는 직원들이 대납 제도를 더 잘 알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연금공단은 일선 지사 상담 창구에서 꾸준히 대납제도를 알리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납하는 가입자가 별로 변동이 없어 그런 설명이 와 닿지 않는다. 건보공단 홈페이지를 수차례 검색해야 대납 정보를 볼 수 있고 연금공단 홈페이지에는 아예 없다. 김승희 의원은 “연금공단이 법적 근거 없는 대납 제도를 본인들만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종전보다 국민 신뢰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20~40대 불신이 여전하다. 제도 지속가능성과 기금 운용에 대한 불신이 깊다. 이런 탓인지 국민의 평균 가입 기간도 22년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짧으면 연금이 늘 길이 없다. 누군가가 보험료를 대신 내줄 수 있다면 노후소득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국민과 연금공단 직원의 인식 차이 55배가 무엇을 말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정종훈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