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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겸손을 가르쳐 준 버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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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때로 내가 잘할 줄 아는 것에 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나 대답은 늘 부정적이다. 모든 여자가 평범한 일상으로 겪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변변히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이 이날까지 어머니이자 아내로 살았다는 게 내 자신도 믿기 힘들다. 할 줄 아는 게 연극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무대에서만은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교만이 아니라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이라고도 믿어왔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최고가 되긴 아직 멀었으며, 내 자신에게 주입했던 그런 믿음들이란 사실 근거가 희박한 것이었다고 자책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무용을 하는 한 친구가 조심스레 프로포즈를 해왔다. 곧 막을 올릴 그녀의 공연에 우정출연해 줄 수 있겠느냐고. 그녀는 나에게 불교의식 중 여섯가지 공양을 드리는 장면에 내레이션을 해주길 원했다. 춤을 잘 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선선히 응낙했다.

리허설을 위해 연습장에 갔을 때, 나는 뭔가 엄숙한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가야금과 장구 소리는 어딘가 오금을 저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 가락에 맞추어 30대 여인네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오로지 춤밖에 생각하지 않는 듯한 그 얼굴들은 경이롭다고나 할까, 감동적이라고나 할까, 어떤 숭고함을 일깨워주는 것도 같았다. 그 순간 나보다도 몇십년이 더 어린 그들이 저렇게 경건한 몸짓을 보여주는데 나는 뭘까, 너무 자만했었나 하는 자의식이 밀려왔다. 뭔가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은 사실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내 몫의 콘티는 이랬다. 막이 오르면 나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통해 혼자 무대에 등장한 다음 음악에 맞춰 무대 안쪽 끝까지 걸어간다(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면 외롭진 않겠지만 우리에겐 언제 어느 순간에건 혼자 남는 때가 온다). 그리고 부처님께 드리는 향 공양, 꽃 공양, 과일 공양, 차 공양 같은 육법 공양 춤사위 때마다 내레이션을 하다가 맨 마지막엔 죽비를 친다.

그때 나는 버선발로 걷는다. 가끔 버선을 신어본 적은 있지만, 사실 버선을 신고 걷는 것이 그리 수월한 건 아니다. 리허설이었지만 안 하던 걸 하자니 긴장했는지 이리 삐뚤, 저리 삐뚤 자꾸만 쓰러질 것 같았다. 편두통을 앓는 사람처럼 몸 하나를 주체하지 못해 마구 기우뚱거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내가 과연 그토록 오래 무대에 섰던 배우가 맞나?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당이 작두를 타는 건 어떤 경지에 올라서일 수도 있지만 혹독한 훈련과 반복에 반복을 더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간단한 동작이라고 해도 반복해 연습하지 않는 한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무엇일 뿐이다.

막을 올리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때까지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버선을 신은 내 발도 휘청거리지 않게 연습하기로 했다. 나는 무대 뒤에서 걷는 연습을 계속했다. 죽비를 손바닥에 부딪치는 연습도 잊지 않았다. 어느날 밤 나는 왼쪽 어깨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 그래도 침을 맞던 팔이라 느닷없이 악화된 건가 의아해 했다. 내 팔이 겨우 몇시간 연습한 것에 티내는 줄 모르고.

객석의 관객들은 출연자의 팔이 저절로 올라가겠거니, 버선코가 알아서 움직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보이기까지 들인 시간과 공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지혜가 는다고 해도 여전히 학습 중일 뿐임을 나는 다시 한번 절감했다. 더 낮아져야 한다고,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세상엔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없는 것, 도달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박정자 연극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