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찬수의 에코파일] 책 읽으려면 반딧불이가 몇 마리 있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반딧불이가 사는 곳은 오염 없는 깨끗한 곳이다. 그래서 청정 환경의 지표생물이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 반딧불이 중에는 5월 중순부터 여름밤을 밝히는 종류도 있다. 반딧불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반딧불은 뜨겁지 않은 ‘냉광’ #짝짓기 때 보내는 모스 부호 #2100종 중 국내에는 8종 서식 #5월 중순부터 등장하는 종도 #150마리는 있어야 독서 가능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을 낸다는 것이다.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모스 부호와 같은 신호다. 짝짓기 때 암수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사랑의 신호’다. 공중 수컷이 신호를 보내면 지상에 있는 암컷이 마음에 드는 수컷을 보고 답신을 보낸다. 반딧불은 또 포식자에게는 자신을 감히 넘보지 말라는 경고등이고, 동료에게는 위험을 알리는 통신수단이기도 하다.

빛을 내는 애반딧불이. 국내에서 관찰되는 8종의 반딧불이 가운데 하나로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오후 9시쯤 출현한다. 노란색 불빛을 내며 1분에 120회 정도로 짧은 간격을 두고 반짝인다. [사진 무주군]

빛을 내는 애반딧불이. 국내에서 관찰되는 8종의 반딧불이 가운데 하나로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오후 9시쯤 출현한다. 노란색 불빛을 내며 1분에 120회 정도로 짧은 간격을 두고 반짝인다. [사진 무주군]

반딧불은 백열전구처럼 뜨겁지 않다. 냉광(冷光)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80%가 빛으로 바뀐다. 백열전구가 뜨거운 것은 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을 한자로 나타내면 ‘형광(螢光)’이지만 과학적으로는 형광(fluorescence)이 아니다. 형광은 외부의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다시 빛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반딧불은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이다. 루시페린이란 색소와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 덕분에 반딧불이가 스스로 빛을 낸다. 루시페라아제는 몸속에 축적된 에너지로 루시페린을 활성화시킨 뒤 다시 산소로 산화시켜 빛을 내도록 한다.

전 세계에는 2100여 종의 반딧불이가 있고, 국내에는 8종의 반딧불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애반딧불이·늦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운문산반딧불이) 등 3종은 전국에 비교적 널리 분포한다.

파파리반딧불이는 5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늦은 밤에 나타나며 암컷은 속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고 수컷만 날 수 있다. 유충은 냇가에서 달팽이를 먹고 자란다. 성충은 크기가 8~10㎜이고, 불빛은 푸른색이 돌 정도로 밝으며, 1분에 80회 정도로 짧게 점멸한다.

늦반딧불이 암컷(오른쪽)과 수컷. 암컷은 날개가 퇴화해서 날지 못한다. [중앙포토]

늦반딧불이 암컷(오른쪽)과 수컷. 암컷은 날개가 퇴화해서 날지 못한다. [중앙포토]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오후 9시쯤 출현하는 애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8~10㎜이며, 암수 모두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을 내며 1분에 120회 정도로 짧은 간격을 두고 반짝인다. 유충은 논·습지·배수로 등에서 서식하며 우렁이·물달팽이를 먹고 산다. 짝짓기 2~3일 뒤 200~3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20~30일 만에 부화하고, 이듬해 봄까지 물속에서 살며 변태 과정을 거친다.

8월 초순에서 9월 초순 사이 초저녁부터 나타나는 늦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15~19㎜로 가장 크며 수컷만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이 길게 반짝거린다. 유충은 산기슭과 밭 주변에서 달팽이를 먹고 산다.

반딧불이가 겉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그 생활사를 들여다보면 섬뜩한 부분도 있다. 수중 생활을 하는 애반딧불이의 애벌레는 다슬기·물달팽이·고둥 등을 먹고 사는 육식 곤충이다. 날카로운 턱으로 먹잇감을 문 뒤 턱의 작은 홈을 통해 강력한 소화마취제를 먹이에 주입한다. 껍데기 속의 상대를 액체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빨아먹는다. 반딧불이는 성충이 된 다음에는 짝짓기하고 죽을 때까지 보름 동안을 그저 이슬만 먹고 지낸다.

제21회 무주 반딧불축제가 열렸던 지난해 8월 27일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남대천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를 방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회 무주 반딧불축제가 열렸던 지난해 8월 27일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남대천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를 방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투리스(Photuris) 속(屬)의 반딧불이는 속이 ‘다른 포티누스 카롤리니스’를 잡아먹는다. 포티누스 수컷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빛을 내면 포투리스는 포티누스 암컷 반딧불이와 비슷한 신호를 내보낸다. 암컷으로 착각한 포티누스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땅으로 내려오면 포투리스가 포티누스 수컷을 붙잡은 뒤 먹어치운다. 포티누스도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포티누스는 자신의 피 일부 배출한다. ‘반사 출혈(reflex bleeding)’이다. 포티누스의 피는 포식자의 입속에서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바뀐다. 포식자가 움찔하는 사이에 포티누스는 달아날 기회를 얻게 된다.

반딧불이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고사성어도 낳았다. 중국 진(晋)나라 효무제 때 사람인 차윤(車胤)은 가난해서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어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었고, 손강(孫康)은 한겨울 눈에 반사되는 달빛으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딧불이 불로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할까.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는 불의 밝기는 3럭스(㏓) 정도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무실의 밝기가 500럭스이고, 옛날 책들은 지금보다 글씨가 훨씬 크기 때문에 150마리 정도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닐이나 유리가 없어 얇은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어 책을 읽었다고 하니 150마리로는 부족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반딧불이는 계속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깜빡거리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또 반딧불이는 2주일을 넘길 수 없으므로 책 읽는 시간보다 반딧불이 잡느라 보낸 시간이 많았을 수도 있다.

한편, 1997년 전북 무주에서 반딧불이 축제가 시작된 이래 전국 곳곳에서 새롭게 발견되면서 반딧불이는 시민들의 생태 감수성을 기르는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