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탄력근로제, 노조가 거부…해법 못찾는 7월 버스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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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상당수는 노선버스는 기사 부족으로 인해 운행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앙포토]

7월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상당수는 노선버스는 기사 부족으로 인해 운행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앙포토]

 7월부터 시작되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노선버스 대란'을 피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탄력근로제 적용을 제안했지만, 버스노조가 강하게 반대해 성사가 어렵게 됐다.

7월 근로시간 단축 앞두고 묘수 없어 #정부, 15시간 이상 운전 탄력근로제 제안 #노조 "애초 법 개정 취지에 어긋난 처사" #업계 "노조가 적극 협력해야 시행 가능" #전문가 "1~2년 유예하고 근본대책 마련" #고용부 "유예는 불가. 대책 고심 중" 밝혀 # #

 이 때문에 서울, 부산 등 버스 준공영제를 실시 중인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시·도에서 노선버스 상당수가 멈춰서는 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거란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8일 정부와 버스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적용에 대한 의견을 버스업계, 노조 등에 타진했다. 고용부가 제안한 탄력근로제는 2주를 단위로 한 주는 48시간을, 다른 한 주는 32시간을 근무하고 여기에 연장 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을 더 붙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 노선버스가 시행 중인 격일제의 경우 첫 주에는 하루 평균 15~17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해진다. 현재 근무 시간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해당 버스 기사는 다른 한 주에는 운행 노선이 짧아 근무시간이 적은 노선을 담당하게 된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 같은 방안은 근로시간이 7월부터 단축되면 당장 1만명이 넘는 버스 기사를 충원하는 게 불가능하고, 비용 부담도 어려워 상당수 버스가 운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에 대한 버스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우선 하루 15~17시간 근무를 유지하는 게 애초 법 개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오지섭 전국자동차노동연맹(전노련) 사무처장은 "노선버스를 특례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단축된 근로시간을 적용케 한 것은 장시간 운전에 따른 사고 예방과 시민 안전을 위한 것인데 당장 상황이 어렵다고 정부가 이를 다시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 처장은 또 "탄력근로제를 할 경우 첫 주에 늘어난 근로시간은 연장근로가 아니라 기본근로에 포함되기 때문에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며 "버스 기사 입장에서는 일은 똑같이 하지만 임금은 훨씬 줄어드는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반발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정부가 한시적으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되 1년 뒤에는 준공영제를 전면 실시하고, 버스 기사의 임금 손실분도 메워준다는 공식적인 약속을 한다면 노조원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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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업계는 일단 7월 법 시행을 위한 정부 방안에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박근호 전무는 "버스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불만과 우려가 크다. 우선 탄력근로제를 적용한다고 해도 추가로 충원해야 할 버스 기사가 9000명이나 되는 데다, 탄력근로제로 인한 버스 기사의 운임 손실분을 메워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버스업계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면 추가로 필요한 버스 기사가 전국적으로 1만 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박 전무는 "업계 내부에서는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탄력근로제가 애초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며 "탄력근로제는 노조가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경우에만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대란이 현실화되면 시민들의 상당한 불편이 우려된다. [연합뉴스]

버스대란이 현실화되면 시민들의 상당한 불편이 우려된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노선버스 대란을 막을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선버스에 대한 근로시간 단축 적용을 1~2년간 유예하고, 버스 준공영제 확대 같은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대중교통연구센터장은 "여러 단점이 있는 탄력근로제는 현재로써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한시적으로 노선버스를 제외하고, 보다 근본적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노선버스는 시민의 소중한 발"이라며 "당장 고비만 넘겨보자는 미봉책이 아닌, 좀 더 여유를 갖고 준공영제 확대 같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선버스가 가장 많은 경기도도 지난달 말 고용부와 국토교통부, 국회에 각각 공문을 보내 노선버스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를 일정 기간 유예해 줄 것을 건의했다. 도 관계자는 “7월까지 필요한 운전기사를 충원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에 건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용부는 적용 유예는 불가하다는 원칙론만 고수하고 있다. 고용부의 황효정 근로기준혁신추진팀장은 "5년 동안 어렵게 정치권이 합의해서 법을 개정했는데 노선버스에 대해서만 적용을 미루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부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중요하고 인식하고 있으며 기밀하게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용어사전탄력근로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근로시간을 탄력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근로제도. 1일 8시간, 1주일에 40시간이라는 규정에 구애됨이 없이  업무나 업무량에 따라 적절하게 근로시간을 조정해 어떤 특정일이나 특정 주에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 근무케 하여도 전체 근로시간을 평균하여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았을 경우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고, 초과 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근로자에게는 여가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등의 장점도 있으나, 장시간의 근로와 불규칙한 근로에 따른 정신적·신체적 부담 외에 초과 근무수당 감소 등으로 인한 소득상의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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