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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런던 콜레라는 어떻게 잡혔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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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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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

메트로폴리스-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

메트로폴리스
-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
제러미 블랙 지음
장상훈 옮김, 산처럼

인류문명의 집약판인 지도 166장 #자본주의 도시 발전과 함께해와 #의학·역학 등 주변 학문에도 기여

1854년의 어느 날, 영국 런던 소호의 브로드 가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유행하자 의사인 존 스노우는 지도 한장을 펼쳤다. 그는 지도 위에 콜레라가 발병한 집들과 환자 수를 표시했고, 그 중심에 식수원 펌프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학계를 지배하는 이론은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장기설(miasma theory)’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기술로는 콜레라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어서 이 발견은 사장될 뻔했다.

하지만 존 스노우는 매일 같이 콜레라가 발병한 가호를 방문해 펌프 물을 마셨는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마침내 수인성 전염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 그는 지역사회를 설득해 펌프를 폐쇄했고, 이후 소호에서 콜레라 유행은 사라진다. 의학의 병인론이 전환됨과 동시에 현대 역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에는 한장의 지도가 있었다.

7개 색상으로 런던의 계층을 구분한 통계학자 찰스 부스의 지도(1889년)의 일부. [이미지 산처럼]

7개 색상으로 런던의 계층을 구분한 통계학자 찰스 부스의 지도(1889년)의 일부. [이미지 산처럼]

존 스노우가 생존했던 100여 년 전만 해도 인구의 단 10%만이 도시에 살았다. 그러나 현재 인류의 절대다수는 도시에 산다. 문명사에서 특징적인 현상인 도시화는 도시의 삶에 대한 민중의 기대를 방증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대다수에게는 환영이었고, 촌락에서의 가난은 도시에서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사회적 통제는 비교적 느슨했다. 느슨한 통제는 새로운 생각의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대중에게 변화를 경험하게 해주었고, 그 변화의 결과를 우리가 살아간다.

이런 도시화는 환경을 장악하고 조직하려는 인류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인한 결과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도시가 발달했고, 대규모 인구로 구성된 도시는 측정과 관리를 필요로 했다. 이로 인해 그림으로 유용한 정보를 담은 지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도시의 발달에 발맞추어 진화한 지도에는 당대의 세계관과 기술력이 집약될 수밖에 없었다.

166장의 지도로 도시의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바로 이런 주제들을 논의한다. 도시의 역사와 지도의 역사를 병치함으로써 도시의 성장과 인류의 공간 활용, 사람들이 공간을 재지정하는 과정 등을 추적한다.

기원전 1250년경, 테라코타 점토판에 새겨진 메소포타미아 니푸르의 지도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인천의 송도국제도시 조감도로 끝나는 이 책은 도시의 본격적 발달과 함께 지도가 대거 제작된 르네상스 시대부터 제국이 이루어지던 시기와 산업혁명 시기, 그리고 현재의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도가 시대에 따라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당대를 재해석하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19세기 영국의 의사는 지도 한장에서 질병의 원인을 보았다. 덕분에 의학은 획기적으로 도약했고, 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도 등장했다. 지도 안에서 맥락을 읽어내는 눈이 때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런 개안에 대한 기대를 잠시 접어둔다고 해도, 지도가 그려낸 역사적 도시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현석 소설가·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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