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선생님께 과학실험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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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보체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의 지도로 고무풍선을 이용한 헬륨기구를 만들어 일정 높이로 유지하는 실험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산기슭에 자리 잡은 보체초등학교. 안성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하루 세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에 있고 전교생이 111명이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이 받는 교육 내용은 결코 외진 게 아니다. 이 학교엔 삼성종합기술원 석.박사 연구원 8~9명이 격주로 찾아온다. 학생들이 평소 할 수 없었던 다양한 과학실험을 함께 해 주기 위해서다. 지역에 둥지를 튼 화가들도 수시로 찾아와 그림 지도를 해 준다. 적어도 과학자와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가는 데 있어 이 작은 시골마을 학교 학생들은 어느 대도시 학교도 부럽지 않다.

3일 오후 보체초등학교 과학실. 흰색 실험복을 입은 5, 6학년 학생 29명과 파란색 조끼를 입은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 9명이 어울려 모둠별로 실험대에 둘러앉았다. 이날의 실험 주제는 '헬륨가스의 재미있는 특성 이해하기'다.

"헬륨가스를 마시면 목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부터 실험해 보겠어요." 진행을 맡은 안승언 연구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한목소리로 합창한다.

"선생님부터 해 보세요.(웃음)" 헬륨가스를 마신 안 연구원이 '도널드 덕'처럼 이상한 목소리를 내자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가스'를 마셔야 하는 게 못 미더워 머뭇거리던 학생들도 돌아가며 같은 실험을 하면서 마냥 신기해 했다.

"목소리는 성대가 진동해 나는데 입 안에 공기보다 밀도가 낮은 헬륨이 있는 상태에서는 목소리가 2.7 옥타브 높아지게 됩니다." 안 연구원의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은 헬륨가스를 넣은 고무풍선기구 만들기. 과학실 가득 오색 풍선이 피어올랐다. 모둠별로 공중의 일정 높이에 기구를 유지시키는 게임을 하면서 과학실은 또 한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못 쓰게 된 CD와 호스 조각을 이용해 만든 호버크래프트(공기의 힘으로 떠 있도록 설계된 배) 실험도 이어졌다.

임다혜(5학년)양은 "과학이 딱딱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흥미로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송이(6학년)양은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실험을 하던 삼성종합기술원 이명재 박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직접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 준다는 자부심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의 학교 현장 과학실험 지원 활동은 '꿈나무 과학교실'이란 이름으로 안성시 10개 초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1년에 700여 명의 연구원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변재봉(전무) 봉사단장은 "기업의 특성을 살려 지역 사회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보탬이 되기 위해 꿈나무 과학교실을 시작했다"며 "지속적으로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시각 4학년 교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혹은 갖고 싶은 것) 예쁘게 그리기'를 주제로 4학년 학생 20명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학교 인근에서 작업실을 겸한 미술전시장인 '대안 미술공간 소나무'를 운영하는 화가 전원길(대표).최예문(관장)씨가 '선생님'이다. 최씨는 "문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나섰다"고 말했다.

송길남 교장은 "아이들이 교실 밖 선생님들로부터 배우면서 과학과 미술에 큰 관심과 흥미를 보이고 있다"며 "세상 밖으로 학교 문을 열면 교육이 보다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안성=김남중 기자 <njki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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