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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입안과정 삐꺽대는 "소리"높다|민주화 바람속 삼각파도 탄 경제팀|건설·농정등 정치권압력은 거세고|실무진에선 "실현성없다"볼멘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라 살림의 근본 줄기를 잡아가는 주요경제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요즘들어 부쩍 「소리」가 많이 나고있다.
정치판의 민주화 바람에 맞추어 경제구조조정자문위·각종 공청회·토론회등 서로가 자기 주장을 목청껏필수 있는 「소리마당」이 부쩍 늘어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안에서도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행정보다 각 부처가 이익대변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눈에 띄게 잦아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치권의요구가 큰 압력으로 계속 밀어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간 비교적 손쉽게 항로설정을 해오던 경제정책의 운용이 전에 없던 「3각파도」를 만난 셈인데, 이때문에 경제정책의 총괄부서인 경제기획원은 요즘 과거 어느때보다도 어려운 시절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서도 「소리」는 여러군데에서 나고 있다.
농정의 기본방향에 대한 기획원과 농림수산부의 공방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윤근환 장관이 농림수산부를 맡으면서부터 심지어 부처간의 최종 합의절차인 경제장관회의에서『실무진이 기획원의 강압에 못이겨 동의해준 것이니 나는 동의 못하겠다』는등의 발언을 서슴지않아 보다 못한 오명체신부장관이 중재에 나선 일까지 있었다.
또 지난번 6차계획 농정부문 심의안이 성안될때는 농지소유상한제의 존폐 여부등을 둘러싼 심한 의견대립끝에 막판에 농림수산부가 발표자료의 표지에 인쇄된 「농림수산부」라는글자를 지워버리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얼마전 나웅배 부총리가 밝힌 6차계획기간중 주택25만호 추가건설, 국채 발행을 통한 도로정비특별회계의 신설방침등도 많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정작 집짓는 실무부처인 건설부는『일언반구 사전협의도 없었을 뿐더러 눈꼬리만한 재정지출을 늘리고 주택부문의 대GNP 투자비율을 조금 끌어올리기만 하면 집25만채가 뚝딱 지어진다는식의 기획원 특유의 탁상행정에는 절대 응할수없다』며 당초계획대로 「2백만호」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국보위 시절 자랑스레 내걸었다가 슬그머니 철회하고만「500만호건설」의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도 있다.
국채발행여부는 기획원 내부에서 조차 아직 예산실이나 기획국등 부서간에 이견이 계속되고 있는 예민한 이슈인데, 지난 주말의 경제구조조정자문위 제6차전체회의에 참석한 문희갑기획원 차관이 『국채발행은 절대 불가하다』는 소신을 거침없이 펴 기획원 내부의 불협화음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여기에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인 내년 상반기의 경기동향에 대해 특별히 민감하게 걱정하고 있는 민정당측은 『이제 재정의 역할도 과거와는 달리 볼때가 되었다』며 복지부문에대한 공공투자를 명분으로 세워 확대재정, 심지어 적자재정까지도 스스럼 없이 거론해오던 끝에 바로 얼마전에는 각부처의 예산요구를 민정당이 직접 받아 기획원에 전달해주겠다고 나서 예산실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 하반기 통화관리 전망과 수단을 놓고 실무부처인 재무부는 『하반기 경상수지 흑자를 이렇게 적게 잡아놓고 달리 특별한 통화관리수단도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볼이 멘 끝에 하반기경제운용계획을 확정짓는 경제장관 회의에서 사공일 재무부장관이 단단히 「한판」을 벌이려고까지 했으나 기획원과 재무부 참모진들의 중재로 간신히 무마된 적도 있다.
또 요즘 기획원 내부에서는 복지·성장지지를 염두에 둔 재정수요팽창을 놓고 『요사이 돌아가는 것을보니 물가나 안정은 이제 물건너가게 생겼다』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나오고있고, 부총리가 장관회의를 거쳐 청와대로 들고가는 정책입안에 평소 반대입장에서 있는 기획원 내부의 핵심라인들이 줄줄이 소외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주택 5만호 추가 건설방침이 바로 그같은 「급행열차」를 탔던 정책 입안이었다.
또 얼마전 청와대경제수석실로부터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신중히 검토하여 보고하라』고 내려간 석재산업육성방안은 기획원 실무자들로부터 『정책의 줄기도 아직 제대로 못잡는 큰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매달려있다니…』하며 좀 어이없어 하는 반응을 얻었다.
이밖에도 「소리」나는 정책입안의 예를 들자면 얼마든지 더 있지만 문제는 그같은 「소리」들을 그저 단순한 불협화음 정도로 듣고 지나칠 수는 없다는데 있다.
다시말해 경제부처간의 팀웍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누구 누구의 수완이나 리더십이 없다든가하는데 그칠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대로 들어보면 요즘 생기는 그같은 마찰음들은 대부분▲부처간의 논리적 소신과 이익대변적인 주장(농정방향에 대한 기획원과 농림수산부의 대립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치논리와행정논리▲거의 끝이 없는 욕구분출과 수용능력의 한계등이 필연적으로 빚어낼수 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나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경제정책이 3각파도를 만난 배처럼 중심을 못잡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표류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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