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동양학연「티코미로프」부장 인터뷰 최철주동경특파원|"소련은 일본보다 한국기술이 더필요"소 대한국자세 중국식 닯아갈것|한-소 경제교류 정치기류에 영향|북한유학생에 조선말 배워…지금은 대개 고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경에서 열린 「한반도통일에 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소련의 「블라디미르·티코미로프」동양학연구소부장(59)은 한국및 북한에 관한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내놓은 아시아-태평양 문제담당 총책임자다.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1950년대부터 북한을 수시로 왕래, 지도층과 교류를 가져왔으며 현재 북한 당정치국원을 일부 포함한 핵심간부들과 모스크바에서 같이 대학시절을 보내 그들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있다.
-소련은 극동에 2개의 경제특구설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경제 개방정책 방향은 어떤 것인가.
한국은 소련이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협력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을 새로 두었다는데 큰관심을 가지고 있다.
▲재작년7월 「고르바초프」서기장의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을 주의깊게 관찰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전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이 21세기의 주역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시켜왔다.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있은 직후에 우리연구소는 그 내용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관계책자 발행을 서둘렀다. 국제관계연구소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다.

<한반도의 안정중요>
학자들의 역할은 어떤 경우에 크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정부 관료들이 때때로 우리를 무시하기도 한다. 그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련은 이 지역내에서 모든국가들의 발전을 위한 경제협력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연구소에서 한국연구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한국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문제는 북한문제와 연결되고, 나아가서 한반도의 변화와 안정보장문제, 그리고 그것은 아시아 전체의 안정에 직결된다.
한국의 GNP (국민총생산)규모도 거대해졌으며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정치적 역할도 증대되었다. 한국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소련의 학자들은 남북회담을 도와줄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또는 남북한분쟁을 해결할수는 없을까 하는데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극동에 설치될 소련의 경제특구는 한국기업의 진출도 적지않게 겨냥하고 있다고 해석할수 있는가.
▲소련이 설치할 2개의 특구, 즉 공업특구 1개와 농업특구1개는 일본의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는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있다. 한국은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직접 들어오기어려울 것이다.

<직접투자는 어려워
그러나 일본등 외국기업과 합작 형태로 들어올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에게는 일본기술 보다는 한국기술이 더 필요하다.
우리는 극동지역에 목재와 석유·석탄·아연등 천연자원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의 경제특구에 들어와 투자할수 있을 것이다.
-중국도 한국과 외교관계는 없으나 민간차원에서 한국의 기술·자본투자를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소련은 중국과 경쟁적으로 한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것인가.
▲중국은 우리보다 한걸음 앞서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전진하고 있다. 한중무역 규모는 벌써 20억달러규모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내생각으로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들중에서 (개방경제의) 모범이 되고있다. 중국은 현재 한국과의 정치·경제관계를 분리하고있다. 정치적으로는 북한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한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소련과는 다르다. 그러나 아마 소련은 대한관계에 있어서 중국의 입장이 될것이다.
-한소간의 경제적 교류증대가 어느만큼 빠른 속도로 정치적 교류에까지 영향을 줄것으로 보는가.
▲그건 알수 없다. 그러나 경제적 교류확대가 정치적 기후를 변화시킬 것은 확실하다.
-중국에 이어 소련의 개방경제 정책이 북한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에 대한 북한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북한에서도 경제적인 개혁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현재 북한지도층 인사들이 中國의 기존경제특구와 소련의 경제특구 설치계획을 면밀히 연구·검토하고 있다. 북한은 어떤 정책을 실시할때 늘 소중의 경험을 샅샅이 살핀다.
그들의 경제특구 검토는 노동자들의 교육수준이 어느정도 높아지고 기술수준도 좋아졌기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었다고 심포지엄에서 지적했는데 그런상태이서 경제특구 설치가 가능한가. 북한은 이미 태영법을 발표했으나 이렇다할 실적도 없다.

<북한도 개방엔관심>
▲금년 4월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때 발표한 「국제정세와 북한사정에 관한 공동성명이 내용이 갈 알려져있지 않다. 그는 이 성명에서 『북한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취지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 자기 요구에 맞는 계산을 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특구는 내년쯤에 설치될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남북긴장 상태때문에 경제특구설치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일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경제특구에 대한 견학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발전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한국 노태우대통령의 「7·7선언」을 어떻게 보는가. 소련의 시각에서 평가해달라.
▲한마디로 말해 노대통령의선언은 남북간의 문을 열어 놓았다. 북한이 이문을 이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선언은 일본이 북한에 들어가 경제적 방법으로 도와주는역할을 노리고 있다.
그것이 장차 한소관계를 밀접하게 해주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나는 여기에 대해 그것이 양국간 정치적 기후의 변화에 작용하게 될것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다.
(「티코미로프」씨는 16일 동경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주한미군및 미기지가 철수되어야 남북대화를 할수 있는 신뢰감이 조성된다고 주장, 북한 입장을 그대로 지지했다.)
-귀하의 한국어는 함경도 사투리가 심한데다 북한전문 용어가 많아 언뜻 알아듣기가 힘들다.
▲소련모스크바동양대학에 조선어과가 설치된게 1946년이다. 그 이듬해에 이 학교에 입학해 5년과정을 마쳤다.
그때는 소련에서 조선어를 배운다는 자체가 매우 희한한 일이었다. 조선어 사전도 없었고교과서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교과자료라는게 기껏 북한 로동신문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모스크바에 유학온 북한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조선어회화를배우기 시작했다.
조선전쟁이 일어나기 2∼3년전에 모스크바에 유학왔던 북한학생들은 나의 친구들이 되었으며 그들의 상당수가 지금은 북한의 거물이 되었다.
-소련과학 아카데미에서는 언제부터 한반도문제를 계속 다루어 왔는가.
▲1952년에 대학을 졸업한뒤 여러 국가기관의 번역원으로 일해왔다. 과학아카데미에 들어간것은 1970년. 동양학연구소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문제의 책임자로서 한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를 둘러싼 일본·중국·미국·호주문제를 다루고 있다.
동양학연구소에는 남북한을 연구하는 특별부서가 별도로 있으나 내 쪽에서도 남북한문제및 발전과 강대국과의 관계라는 시점에서 계속 연구하고있다.

<한국관계서적 인기>
-최근 소련에서 한국관계연구가 어느정도로 진행되고 있는가.
▲나의 경우는 『극동』『신시대』『국제문제』『공산주의』등 여러잡지에 남북한관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금년들어서는 다른 학자들과 함께 1945년부터 88년 초반까지를다룬 『소-조선관계』라는 제목의 4백80페이지짜리 책을 발행했으며 금년에는 우리연구소에서 최근에 내놓은 『남한의 사회구조』『남한의 외국자본』이 발행 이주일만에 매진됐었다.
이 책들은 값이 5루블로 꽤비싼데도 불구하고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우리연구소는 일본·홍콩·싱가포르등을 통해 한국의 각종신문·잡지와 연구논문등을 수집, 반입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구작업도 더욱 호기를 띨 것이다.
-북한의 당고위간부들과는 매우 친교가 깊다던데….
▲작년에 두번이나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옛 친구들이 거의 모두 높은 지위에 있으며그들과 만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나는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는 북한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기간 소련의 대북한관계가 중국과의 문제로얽혀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