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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김정은·트럼프 ‘3자 궁합’ 절묘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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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호 30면

‘한반도 평화’ 연구 30년 이삼성 교수 인터뷰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이삼성 지음, 한길사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 #스타일 자유로운 북·미 지도자 #문 대통령은 관계 조율에 능해 #남북·북미 회담 실패한다면 #미국은 전략·전술 핵으로 압박 #중국은 미국에 책임 떠넘길 듯 #‘평화적 통합’ 왜 필요한가 #분단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발칸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도 기여

라틴어 문헌에서 유래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전쟁과 평화의 관계를 요약한다. 어설프게 평화에 집착하다가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을 준비하다가 원하지 않는 전쟁이 실제로 발발하는 경우도 있다.

제목에 ‘전쟁과 평화’가 들어가는 작품으로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1817~1875)의 소설 『전쟁과 평화 』(1867),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1905~1983)의 『국가 간의 전쟁과 평화』(1962)가 있다. 최근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가 쓴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2009)에 이은 역작이다. 제목에서 학자의 열망이 읽힌다. 고려대 정외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예일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한 이삼성 교수는 30여년간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전쟁과 평화 문제에 천착했다. 이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이 그 요지.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 학과 교수. [사진 한길사]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 학과 교수. [사진 한길사]

이번 책의 목표와 내용을 요약한다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하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 공감대를 확대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평화적 해결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우리 시각에서 체계적·종합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 사반세기에 걸친 북핵 문제와 한미 양국의 대북(對北) 정책 실패 원인을 성찰했다. 완성 단계인 북핵을 해체할 궁극적인 해법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또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 이후의 미래 과제인 동아시아 공동안보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차라리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손쉬운 군사적 해법의 유혹을 떨쳐야 한다. 전면전을 초래할 위험이 없는 군사적 해법은 없다. 선제타격에 의한 첨단전쟁과 참수작전은 ‘좀비 국가들’에게만 통했다. 북한은 좀비가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 의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북한 핵 프로그램은 초기에는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목적 두 가지를 모두 내포했다.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에 목을 맸다고 단정하는 근본주의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핵 개발에 목을 매게 된 것은 체제와 정권의 안보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다. 그러한 북한의 판단과 선택은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라는 국제적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적인 해법을 강조했다고 지적받는다면.
“북한의 평화 제스처가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하기에 화답은 북한의 시간 벌기 전략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 책에 담긴 역사해석과 처방에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장을 완성했다.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한 핵무장과 장거리핵미사일 능력을 바탕으로 평화협상을 제기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군사 행동을 주저한 그럴만한 군사적·지정학적 이유가 있었다. 전면전의 참화와 위험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군사행동의 리스크는 이제 더욱 크다. 회담에 응하는 것이 마치 북한을 타격할 얼마 남지 않은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는 잘못인 양 비판하는 것은 사태 파악을 거꾸로 잘못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행주(지금의 고양시 행주동)에서 한 소녀가 남동생을 업고 있다. 1951년 6월 9일 촬영한 이 사진의 배경에 M-26 탱크가 보인다. [사진 미 해군]

한국전쟁 당시 행주(지금의 고양시 행주동)에서 한 소녀가 남동생을 업고 있다. 1951년 6월 9일 촬영한 이 사진의 배경에 M-26 탱크가 보인다. [사진 미 해군]

남북, 북미회담이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가장 주목하는 근본적 변수는, 미국과 한국 정치권 내부의 합의와 그 지속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치권 내에서 합의의 확보와 유지에 실패하면, 북한 김정은도 한·미 양국과 협상에서 상호 교환과 검증의 내용과 조건을 두고 더 경직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다시 한·미 내부에서 대북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본격화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회담이 실패할 경우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북미회담이 실패하면 미국 정치권에서 협상 무용론이 부상해 대북 군사 압박 전략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의 해상 전략핵·전술핵의 배치가 강화되는 가운데 전쟁 위기는 더 높아질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와 달리 북미 회담 실패의 책임을 주로 미국에 돌릴 것이다.”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된 것은 아닌가.
“한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추구한 철학과 정책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중대한 결정력을 행사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아무리 강경한 보수적 행정부라 할지라도 그 내부에 강경파와 협상파 사이에 긴장과 권력 투쟁이 있다. 미국이 강경파와 협상파 사이에 우왕좌왕할 때 한국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상황을 결정하게 된다. 한국이 미국 강경파를 지지하면 전쟁 위기가 증폭된다. 한국이 대북 대화를 주도하고 중국과도 일정하게 소통하면서 미국에 평화적 해법을 제시하면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강경파들이 협상에 동의할 명분과 출로를 제공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구조도 중요하지만, 지도자 변수도 중요하다.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보는지.
“김정은에겐 김일성·김정일과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완벽한 전체주의적 통제에 익숙하고 시장을 두려워했다. 김정은은 경제와 사회에 대한 완벽한 전체주의적 통제에 미련을 갖고 있지 않다. 시장이라는 호랑이 등에 기꺼이 올라타려 하고 있다. 젊은 지도자답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지도자들과 달리 김정은·트럼프는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감하면서도 신중하게 관계를 조율하는 데 능한 성격이다. 대국적인 대타협을 이루어야 할 북한과 미국, 그리고 그것을 섬세하게 조율해내야 할 한국, 이 세 나라의 지도자로서 김정은·트럼프·문재인은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그만큼 실기해서는 안 될 귀중한 역사적 조건이다.”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분단국가체제 하의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발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불안하지만 동아시아 다른 사회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한반도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적 통합을 이루게 되면 우리는 태평양과 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고 통합하며 이 지역의 공동안보를 구축하는 지적·외교적 균형자 역할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분단국가체제 하의 한국은 경제적 성숙에서도 민주주의의 성숙에서도 근본적인 한계 상황에 갇힐 수 있다. 7500만 한반도인 모두에게 평화적 통합은 그것 자체가 갈등과 전쟁의 위기를 끝낼 국가안보이며,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할 인간 안보이다. 평화적 통합은 동아시아 공동안보에 기여하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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