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자들이 공개한 ‘미투’ 증언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도 각료와 여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미투’ 운동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한 신문사 여성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성폭력 사례를 한겨레가 25일 보도했다.

'미투' 손팻말 들고 재무성 항의 방문한 日 야당의원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20일 일본 야당의원들이 검은색 옷과 '#미투'라는 손팻말을 들고 재무성을 방문해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미투' 손팻말 들고 재무성 항의 방문한 日 야당의원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20일 일본 야당의원들이 검은색 옷과 '#미투'라는 손팻말을 들고 재무성을 방문해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매체는 전날 도쿄신문이 자사 기자들의 피해 사례를 수집해 공개한 내용을 전하며 한 여성 기자는 검찰 관계자와 식사하던 중 몇번이고 “키스해달라”, “가슴을 비벼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다른 기자는 축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방자치단체 과장한테 술을 따라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후 그는 “너를 성폭행하고 싶다”고 큰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차에 함께 탄 경찰관이 갑자기 “같이 목욕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지자체 간부가 엉덩이를 만져서 항의하니 “넌 괜찮지 않냐”는 적반하장 식 대답이 돌아왔다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런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을 꺼려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여성 기자들은 “남성이 많은 회사에서 여성의 피해는 얼버무려지는 분위기가 있다”, “상담을 해서 더 상처받는 ‘2차 피해’가 무서웠다”고 매체에 털어놨다.

이러한 ‘미투’ 운동의 계기는 지난 18일 사퇴 의사를 밝힌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재무성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이다. 지난 12일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는 후쿠다 차관이 회식 자리에서 여기자들에게 “가슴 만져도 되냐” “호텔에 가자” 등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현장의 음성 파일까지 공개됐음에도 후쿠다 차관은 “기억에 없다” “내 목소리인지 모르겠다”며 발뺌했다. 결국 18일 아사히TV가 피해 여성이 자사 기자라고 밝히며 재무성에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면서 후쿠다 차관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NHK는 20일 “후쿠다 차관 사건 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이들의 대다수가 회사나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번에 분출하고 있다”며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심각하다. 인터넷 상에는 이미 피해 기자의 실명과 방송 출연 모습을 담은 사진이 퍼졌고 “단둘이 만난 기자가 잘못이다” 등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는 트위터에 “기자로서 자부심은 없는 것인가”, “같이 밥을 먹지 않아도 취재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도쿄신문의 한 기자는 “(재무성 사무차관 사건의 성희롱 사태는) 결국 말에 그치는 것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말은 결국 행동으로 옮겨간다. 그런 현장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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