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지킬 앤 하이드'의 거리 여자역 김선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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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넌 창녀 전문 배우냐'라고들 해요. 최근에 '마리아 마리아', '지킬 앤 하이드'에서 '거리 여자'만 연기한 탓이죠. 너무 익숙해져 평상시에도 그런 모습이 불쑥 나오면 어떡하죠, 호호."

털털했다. 내숭과는 담을 쌓은 듯 보였다. 무대 위 폭발적인 에너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뮤지컬 배우 김선영(32)씨 얘기다.

그는 조만간 일본에서 '한류 스타'로 확 뜰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지킬 앤 하이드' 일본 공연 당시 조승우 못지 않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쉬리' '말아톤'을 수입했던 아뮤즈 엔터테인먼트 요키치 오사토 회장은 "저런 배우를 지금껏 몰랐다는 게 신기할 뿐"이라고 평했다. 그의 무대를 한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칭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것이다.

"예전엔 루시를 연기하면서 그저 자기 연민에만 빠졌던 것 같아요. 이번엔 명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연민 이상의 그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죠."

클라이맥스로 치고 올라갈 때의 절절한 가창력은 전율 그 자체다. 그러나 김씨의 진가는 '감정 이입'에서 더 빛이 난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그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술집의 왁자지껄함이 독백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 미묘한 간극을 그는 "날마다 묻곤 해 나에게"라고 처연히 읊조린다. 범상치 않은 어떤 사연이 느껴진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란 이런 게 아닐까.

뮤지컬계에 입성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전 혜천대 성악과를 나와 1995년 KBS 합창단에 들어갔다. '빅 쇼' 리허설 때 윤복희의 '메모리'를 듣곤 "내 길은 바로 저것"이란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노래 꽤 한다는 소문이 퍼져 뮤지컬 배우보단 가수의 길에 먼저 들어섰다. "가수로 인기 끌면 뮤지컬 하기도 쉽지 않을까란 얄팍한 생각이 있었죠. 근데 IMF로 막상 음반도 나오지 못했어요."

이번에 '지킬 앤 하이드'는 지방 공연을 한다. 부산(13~16일)과 대전(20~23일)에서다. 조승우가 빠졌으니 그의 책임감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6월엔 '미스 사이공'의 엘렌으로 무대에 선다. 이래저래 바쁘고, 그래서 더 신이 나는 2006년이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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