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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명 구한 또 다른 '설리'…美엔진폭발 여객기 여성 기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2016년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조종사 설리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뉴욕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새떼를 만나 양쪽 엔진이 고장나는 위기를 맞았다.

한쪽 엔진 폭발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불시착한 #해군조종사 출신 슐츠 영웅으로 #사고원인은 금속피로 현상

그러나 설리는 당황하지 않고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하는데 성공한 뒤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모든 승객의 안전한 대피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가 상영된 당시 세월호 선장과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17일(현지시간) 3만피트(9100m) 상공에서 엔진 폭발을 일으킨 여객기를 필라델피아 공항에 불시착시킨 여성 기장이 또다른 설리로 떠올랐다.

위기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담한 불시착으로 144명의 목숨을 구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태미 조 슐츠 사고 여객기 기장. [AP=연합뉴스]

위기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담한 불시착으로 144명의 목숨을 구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태미 조 슐츠 사고 여객기 기장. [AP=연합뉴스]

주인공은 미 해군의 1세대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 인정받은 태미 조 슐츠(56).
슐츠 기장이 조종한 사우스웨스트 항공 1380편 보잉 737기는 승객 144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우고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한 뒤 20분 만에 왼쪽 엔진이 폭발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는 기체에 구멍이 나면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고, 깨진 창문으로 승객이 빨려 나갈것 같은 아비규환 상황에서 냉정을 잃지 않고 기수를 인근 필라델피아 공항으로 급히 돌려 비상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고여객기 기체에 구멍이 나면서 기내 기압 강하로 산소마스크가 내려온 모습. [AP=연합뉴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고여객기 기체에 구멍이 나면서 기내 기압 강하로 산소마스크가 내려온 모습. [AP=연합뉴스]

사고기 승객이었던 조 마커스는 “진정한 영웅”이라며 “그 같은 상황에서 그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은 정말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슐츠 기장이 관제탑과 나눈 교신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대담함을 느낄 수 있다.

[태미 조 슐츠 기장]
“기체 일부가 소실됐다. 활주로에 도달하면 응급 의료진을 보내줄 수 있는가.”
[관제탑]
“불이 붙은 상황인가.”
[슐츠 기장]
“불은 아니다. 기체 일부가 소실됐다. 구멍이 났다.”

해군 소령 출신의 슐츠는 비상착륙 직후 조종석에서 기내로 나와 승객들의 안전을 일일히 챙겼다고 승객들은 전했다.

승객 캐시 파난은 “32년 경력의 여성 기장이 우리를 살렸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객 앨프레드 툼린슨은 “대단한 담력을 지닌 여성조종사다. 크리스마스에 기프트카드를 보내주고 싶다”고 칭찬했다.

비록 40대 여성 탑승객 한명이 사망했지만, 148명의 생명을 구하고 대형참사를 막아낸 영웅으로 떠오른 슐츠는 미국 민항기 조종사 가운데 6.2%에 불과한 여성 조종사 중 한명이다. 항공업계의 편견을 단번에 깨버린 셈이다.

슐츠는 1983년 캔자스주의 미드아메리카 네이저런대를 졸업하고 미군에 지원했다.
공군에선 여성에 대한 차별로 입대를 거부당했고, 대신 해군으로 입대해 FA-18 호넷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가 됐다. 그는 FA-18 호넷에 탑승한 첫 여성 조종사 가운데 한 명이다.
교관을 거쳐 소령으로 전역한 슐츠는 해군에서 만난 남편과 함께 사우스웨스트항공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한편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로버트 섬웰트 회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엔진의 팬 블레이드(날) 하나가 분리됐고 사라졌다”면서 “블레이드가 중심에 있어야 할 자리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아 ‘금속 피로’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속피로란 고속 회전하는 기계장치 등에서 금속이 지속적인 진동에 의해 물러지면서 균열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게리 켈리 사우스웨스트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사고 비행기가 이틀 전 점검을 받았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직원들이 사고 여객기의 부서진 엔진을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직원들이 사고 여객기의 부서진 엔진을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사고 여객기에 장착된 CFM56 엔진은 미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사프란SA의 합작사인 CFM이 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객기 기종인 보잉 737에 대부분 탑재됐다.
NTSB는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엔진을 정밀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에는 최장 15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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