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중국 가열되는 “내정간섭” vs “인종차별”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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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호주 내 영향력 확대를 둘러싸고 양국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호주 내에서는 중국이 자금력을 앞세워 정계ㆍ재계 등에서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내정간섭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뜨겁다.

호주 “中이 돈 앞세워 정계 등서 영향력 확대” #中 정치자금 받은 상원의원은 정보 누설해 사임 #호주 의회, 외국인 정치자금 지원 규제법 추진 #中 “호주 정부의 냉전적, 인종차별적 인식” #호주 내 화교사회도 찬반으로 나눠 갈등 #양국 간 경제보복으로 이어질까 우려도

AP통신 등은 8일(현지시간) “호주 의회가 중국의 내정간섭을 막기 위한 법안을 심의하고 있으며 관련 보고서를 이달 안에 완성할 예정”이라며 “법안과 보고서의 내용은 외국인의 정치 자금지원과 첩보활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에 관한 것으로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호주 정부가 냉전적 사고에 빠져 반중국 히스테리와 편집증을 보이고 있다”며 “냉전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주 내 반 중국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호주 내 중국계 학자 35명이 “중국 공산당의 호주 내 영향력 실체를 규명하고 내정 간섭을 배격하겠다는 호주 정부의 방침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의회에 전달했다.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의 전방위 로비를 막고 불법 행위에 대해선 단호히 응징해야한다는 요구다.

말콤 턴불 호주 총리.

말콤 턴불 호주 총리.

이들은 또 인종차별을 조장한다는 중국 측의 주장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내정간섭’ 논란을 잠재우려고 인종차별이라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며 “호주 거주 화교와 호주인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호주 정부가 내정간섭을 막는 법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은 관련 사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에는 친 중국 성향의 노동당 샘 데스티에리 상원의원이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중국계 기업으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고 정보를 건네준 혐의로 사임했다. 데스티에리 의원은 평소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인물이다. 이외에도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호주 정보당국은 금전을 받고 중국에 정보를 건네준 사례를 여러 건 적발했다.

말콤 턴불 호주 총리도 반 중국 기류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 섬 건설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말 나온 호주 외교백서는 “중국의 일대일로(육ㆍ해상 실크로드)사업은 패권주의다”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모습. 현재 호주에서는 중국이 로비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에 열린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모습. 현재 호주에서는 중국이 로비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반 중국 분위기가 가열되자 호주 내부에서는 경제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지 매체인 디 오스트레일리언은 “재계 지도자들은 양국 관계 악화가 무역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의 무역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연 1750억 호주달러(약 145조원)로 이는 미국-호주 무역액의 3배에 달한다.

호주와 중국 간 갈등은 120만 명 규모인 호주 내 화교 사회의 분열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이주 시점에 따라 화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설명한다.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의 경제 발전 이전에 공산당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주에 정착한 사람은 50만명 가량으로 이들은 친 호주 성향을 보인다. 반면 경제발전 이후 건너온 70만명은 현재도 본국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 반 중국 정책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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