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무엇을 위한 新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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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생활환경에 처해 있다. 그 중에서도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와 정보의 홍수는 여론을 조작하거나 국민을 눈가림할 수 없게 만들었고, 높은 교육수준은 국민의 보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민주적인 지배형태,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불안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지난 6개월 간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신당 논의로 시끄럽고 최근에는 국민에게 추태만을 보여 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미국식 대통령제 운영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새천년민주당의 딜레마는 당 전체를 결집해 이끌어갈 수 있는 확신있는 미래형 지도자의 부재에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정당을 표방하는 집단은 있어도 이를 자신있게 끌고 갈 수 있는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야당의 분당(分黨)사태는 여러 번 경험한 바 있지만 지금처럼 여당이 분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처음 있는 경우다. 정당의 민주화 과정일까? 아니면 대통령이 소속 정당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일까?

한국의 정치인 중 소속했던 정당으로부터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해 성공한 정치인은 지금까지 김영삼씨와 김대중씨 두 사람뿐이다. 김영삼씨는 1987년 이민우 대표와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헌법개정에 견해 차이를 보이자 신민당을 탈당한 후 독자적으로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달성하고 그 결과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김대중씨 또한 95년 지자체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서울에서 성공하자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이기택씨를 우회하기 위해 민주당을 포기하고 국민회의를 새로이 창당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김영삼씨와 김대중씨의 공통점은 본인들 주도하에 신당을 창당하기 위해 스스로가 소속됐던 정당을 탈당함으로써 기존 소속 정당에서 차지했던 기득권을 미련없이 포기했고, 또한 이들을 따르는 정치인들과 후원세력들이 있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확신이 있는 지도자 없이는 새로운 정당의 탄생은 결코 쉽지 않다. 신당을 하겠다는 새천년민주당 내 국회의원들이 내년에 있을 총선거가 두렵고 현재 소속 정당의 재산 및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당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면 신당 창당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들이 시대의 변화 및 국민 의식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에 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면 일차적으로 용기있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말만 있을 뿐 행동하는 정치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새천년민주당은 지금의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소수 여당이다. 새천년민주당은 소속 의원 모두가 힘을 함께 하더라도 다수인 야당의 힘에 대항해 정부를 돕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신당파와 반대 세력 사이에 투쟁이 지속돼 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되면 국민은 이러한 정치집단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은 국민 앞에 솔직해야 한다. 그동안 신당 추진세력은 현재의 소속 정당은 지역정당의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전국정당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고, 반대 측은 새천년민주당은 정권을 재창출한 정당으로 결코 지역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들은 내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직 국민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의 신당 논쟁은 내년도 총선을 앞둔 두 세력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비춰질 뿐이다.

새천년민주당은 최근에 보여준 추태를 더 이상 지속하지 말고 신당에 관한 결론을 이른 시일 내에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국민은 매우 현명하며 결코 어리석지 않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