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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두 시간 만에 370억원 짜리 그림이 팔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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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22면

2018 아트바젤 홍콩 가보니  

영국 레비 고비 갤러리에 걸린 빌럼 데 쿠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 개장 2시간 만에 370억 원에 팔렸다.

영국 레비 고비 갤러리에 걸린 빌럼 데 쿠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 개장 2시간 만에 370억 원에 팔렸다.

 빌럼 데 쿠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370억 원에 팔리는가 하면, 사고 팔기 힘들어 보이는 에르빈 부엄의 관객참여 퍼포먼스도 ‘전시’되는 곳. 파블로 피카소의 회화가 내걸리고 현대미술 셀러브리티 제프 쿤스가 활짝 웃으며 지나가는 곳.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펼쳐진 2018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의 모습이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27~28일 VIP 프리뷰 현장을 다녀왔다.

인카운터 섹션에는 퍼포먼스가 ‘전시’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엄의 관객 참여 퍼포먼스

인카운터 섹션에는 퍼포먼스가 ‘전시’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엄의 관객 참여 퍼포먼스

아트바젤 홍콩의 VIP 프리뷰가 시작된 27일 홍콩 컨벤션 센터. 갤러리 부스들 사이 널찍한 공간에 거대한 원형 금속 테이블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금색과 은색의 고층건물 미니어처 같은 원통이 즐비하다. 미래 도시 풍경 같지만, 이 원통들은 ‘다바(Dabba)’라고 불리는 인도 특유의 금속 도시락통이다.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는 이 작품으로 전통과 현대화가 뒤섞인 인도의 식문화, 또 도시락 전문 배달부 ‘다바왈라’의 노동과 애환을 이야기한다. 굽타의 동아시아 전속 갤러리인 한국의 아라리오가 ‘인카운터(Encounters)’ 부문에 내놓은 작품이다.

인카운터 섹션에서 홍콩의 에두아르 말링그 갤러리가 선보인 중국 작가 추유챙의 작품

인카운터 섹션에서 홍콩의 에두아르 말링그 갤러리가 선보인 중국 작가 추유챙의 작품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아트바젤 홍콩의 대표적인 볼거리가 바로 ‘인카운터’ 부문이다. 미술관에 적합할 대형 설치작품이 주로 전시됐다. 영국 리슨 갤러리가 라이언 갠더의 작품을, 독일 노이게리엠슈나이더 갤러리가 쿠바 작가 호르헤 파르도의 작품을 내놓는 등 12점의 대형 장소특정적 작품이 시선을 끌었다. 아트페어보다 비엔날레에 더 어울릴 법한 작품도 있었다.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엄의 관객참여 퍼포먼스 ‘원 미닛 스컵처(One Minute Sculpture)’가 그렇다. 관람객들이 작가가 지시하는 대로 분홍 토끼인형을 머리에 얹는 등의 포즈를 취하고 1분 동안 조각품이 되는 것이다.

미국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제프 쿤스 신작들

미국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제프 쿤스 신작들

블루칩 작가들의 향연
메인 행사는 세계 주요 갤러리 195개가 참여해 블루칩 작가들의 수집하기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Galleries)’ 부문이다. 올해의 화제는 런던 레비 고비 갤러리가 선보인 추상표현주의 대가 빌럼 데 쿠닝의 1975년 추상화였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소장했던 것으로 호가는 무려 3500만 달러(약 370억 원)에 달했는데, VIP 프리뷰 시작 2시간 만에 팔려버렸다.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 부스의 피카소 그림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 부스의 피카소 그림

또 뉴욕의 핫한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는 ‘가장 비싼 생존 작가 중 하나’인 제프 쿤스의 작품 5점을 선보였는데, 호가가 250만~850만달러(약 26억~91억원)에 이르렀다. 거대한 새 조각 ‘블루버드 플랜터’와 기존 서양 명화에 관람객을 비추는 푸른 구체를 붙힌 ‘게이징 볼(Gazing Ball)’ 시리즈 등이다. 게다가 27일에는 회색 수트를 입은 제프 쿤스가 깜짝 등장해 아이돌을 능가하는 폰카 촬영 세례를 받기도 했다. 미국의 폴 맥카시, 중국의 장샤오강, 영국의 앤터니 곰리,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유명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부스에 나타났다.

미국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 부스의 양혜규 작품

미국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 부스의 양혜규 작품

블루칩 작가들과 그들 작품의 대거 등장은 홍콩의 대표 갤러리 펄램의 창업자 펄 램이 말한대로 “이 지역이 전세계에서 미술애호가들을 끌어 모으는 구심점”임을 증명한 셈이다. 데이빗 즈워너가 홍콩 센트럴 지구에 새로 생긴 H퀸스 빌딩에 이번 아트바젤 시즌에 맞추어 새로 홍콩 지점을 연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독일 카를리에 게바우어 갤러리 부스에서 함경아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독일 카를리에 게바우어 갤러리 부스에서 함경아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그러나 올해 행사에서는 세계 미술의 특별한 경향성이나 미래 지향을 찾기는 힘들었다.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 부스에서 만난 가고시안 홍콩 디렉터인 닉 시무노비치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수집가가 점점 더 많아져서 올해 에디션의 어떤 특정 트렌드를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고 평했다.

‘인사이트(Insights)’ 부문과 ‘디스커버리(Discoveries)’ 부문에 참여한 갤러리들을 합쳐 총 248개 갤러리가 32개국에서 참여했다. 그 중 한국 갤러리는 11개로 ‘갤러리’ 부문에 국제·리안·아라리오·원앤제이·학고재·PKM이, ‘인사이트’ 부문에 313아트프로젝트·갤러리바톤·갤러리EM·조현화랑·우손갤러리가 참여했다.

인카운터 섹션에서 한국 아라리오 갤러리가 선보인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

인카운터 섹션에서 한국 아라리오 갤러리가 선보인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

인카운터 섹션에서 독일 노이게리엠슈나이더 갤러리가 내놓은 쿠바 작가 호르헤 파르도의 작품

인카운터 섹션에서 독일 노이게리엠슈나이더 갤러리가 내놓은 쿠바 작가 호르헤 파르도의 작품


단색화 이후 국제 스타가 될만한 한국 미술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주요 외국 갤러리에서도 눈에 띄었다. 런던 화이트큐브 갤러리는 이승택의 캔버스 노끈 설치 작품을 두드러지게 걸어놓았다. 이번주 서울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전광영의 한지 작품은 홍콩 펄램 갤러리에서도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과 마주보고 있었다. 홍콩 리만 머핀 갤러리에는 서도호의 반투명 천으로 만든 변기 조각과 실 드로잉이 길버트와 조지, 에르빈 부엄 등의 작품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특히 양혜규의 작품은 전속인 국제갤러리 외에도 여러 갤러리에서 눈에 띄었다. 인공 짚으로 만든 ‘중간 유형’ 시리즈는 파리의 샹탈 크루젤 갤러리 부스 중심부에, 놋쇠 방울로 덮인 조각은 뉴욕의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 부스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함경아가 북한 자수공예가들과 협업한 연작은 국제 외에 베를린 갤러리인 카를리에 게바우어 등에서 볼 수 있었다.

신학철 작가의 트럼프 풍자화 앞에서 학고재 우찬규 회장(왼쪽)과 대화하는 스위스 수퍼컬렉터 울리 지그

신학철 작가의 트럼프 풍자화 앞에서 학고재 우찬규 회장(왼쪽)과 대화하는 스위스 수퍼컬렉터 울리 지그

국제와 학고재가 백남준의 시그너처 스타일 TV조각을 선보인 한편, 뉴욕 가고시안은 백남준의 색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찢어진 붉은 고무공에 구식 비디오 카메라가 튀어나와 있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실제로 이 고무공에다 카메라를 넣고 몇 년 동안, 공이 터질 때까지, 여기저기서 공을 굴리고 던지며 촬영했습니다. 촬영한 이미지들은 여러 비디오아트 작품에 활용했고, 터진 공과 카메라는 이렇게 하나의 조각으로 만든 것이죠.” 시무노비치의 설명이다.

한국 국제갤러리 부스에 걸린 김환기의 뉴욕시대 전면 점화

한국 국제갤러리 부스에 걸린 김환기의 뉴욕시대 전면 점화

세계적 붐을 일으킨 단색화는 국내외 주요 갤러리 부스 모두에서 2-3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모양새다. 다만 이우환의 작품은 런던 리슨 갤러리 등 여러 부스에서 눈에 띄었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단색화는 물론이고, 단색화와 연계돼 함께 전시되던 아그네스 마틴 같은 외국의 모노크롬 화가들 작품도 눈에 띄게 줄었다”라고 평했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미술시장의 중심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제는 민중미술이 단색화의 뒤를 이어 한국미술의 세계시장 붐을 이끌 것”이라고 단언했다. 학고재는 올해 60만 달러에 팔린 백남준의 작품 외에는 대부분 강요배·윤석남·신학철 등의 민중미술과 그 계보를 잇는 노순택의 사진에 집중했다.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은 것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핵폭발 버섯구름을 절묘하게 조합한 신학철의 그림이었다. 스위스 사업가이자 저명한 아트 컬렉터인 울리 지그도 학고재 부스에 들러 이 그림의 사진을 찍으며 “정치적인 미술에 관심이 많다. 민중미술이 매우 흥미롭다”고 평했다.

한국 313아트프로젝트 부스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제여란 작가

한국 313아트프로젝트 부스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제여란 작가

단색화 이후를 모색하는 것은 국제갤러리도 마찬가지였다. “단색화를 포함해 그 전후 세대 작가들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부스를 작은 한국 현대미술사 박물관처럼 꾸몄다”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의 말대로 국제갤러리 부스는 김환기의 대표작인 뉴욕시대 전면 점화부터 시작해 유영국, 백남준을 거쳐 단색화 시대의 하종현과 권영우, 그리고 이후 세대인 김홍석·양혜규·함경아까지 총망라했다. 부스 안 작은 방에는 지금 서울에서도 전시 중인 김용익의 개념미술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아트바젤 홍콩의 ‘캐비넷(Kabinett)’ 부문의 일환으로 일종의 ‘전속작가 미니 회고전’이다. “단색화 이후 세대 중에는 김용익과 양혜규가 특히 컬렉터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게 이 회장의 귀띔이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급성장한 아시아 시장의 힘, 단색화 이후 한국미술의 새로운 국제적 스타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철저히 블루칩 작가 작품만 선보이는 갤러리와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담론생산적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가 혼재한다는 점, “아트페어가 비엔날레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는 어느 비평가의 볼멘소리와 “그래 봤자 여기서는 저택에 걸만한 적당한 크기의 작품만 팔린다”는 어느 갤러리스트의 한숨이 뒤섞인다는 점이다. 현대 미술의 전위성과 시장의 ‘밀당’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거대한 장소임에는 분명했다. ●

홍콩 글·사진 문소영 기자  사진 아트바젤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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