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1000억 달러 추가 관세” … 보복금액 늘리는 미·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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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15면

G2 무역전쟁 격화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5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에서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 1000억 달러(약 107조원)를 물리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반발에 대한 대응책이다. 하루 전인 4일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와 콩, 항공기 등에 보복관세 25%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관세 500억 달러 부과에 대한 대응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농부와 제조업자에 해를 끼치기로 작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의 미국산 차 25% 관세에 맞불 #미·중, 상대 겁주려 앞다퉈 판 키워 #트럼프, 중국의 산업굴기 견제 전략 #첨단산업 비중 높은 한국 이중고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양쪽이 치고 받으며 협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 두 나라는 추가 관세를 발표했을 뿐이다. 관세를 상대국 제품에 아직 물리지 않은 채 협상을 벌이고 있다. CNBC는 “양쪽이 베팅 금액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상대에게 겁주고 있는 모양새”라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시아 시장은 바짝 긴장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0.33%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와 중국 상하이종합주가지수도 약세를 보였다. 두 나라 무역전쟁이 협상으로 끝나지 않을 조짐이 보여서다.

이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트럼프와 동시에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이 사활이 걸린 하이테크 분야를 왜곡하는 정책 대신 혁신 등을 제대로 보상할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하면 세계 경제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추가 보호관세 1000억 달러도 중국 정보기술(IT) 제품 등을 겨냥할 것임을 내비친 셈이다. 트럼프는 3일 중국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 항공 제품 등에 보호관세 500억 달러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기술분야에 보호관세를 집중하고 있는 것은 스티브 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경제학) 등이 최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신중상주의(New Mercantilism)’이다. 국부의 원천을 기술로 보고 교역 상대국이 첨단 기술을 개발하거나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하는 중상주의란 얘기다. 반면, 옛 중상주의(17~18세기)는 금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고 경쟁국가가 금을 확보하기 어렵게 하는 교역정책이었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바로잡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트럼프 신중상주의의 타깃은 중국이 추진 중인 ‘중국제조(Made in China) 2025’다. 중국이 2025년까지 기술적 자립을 통한 산업굴기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IT와 AI, 항공우주, 고속철도, 첨단 조선, 바이오 등 10개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추는 게 구체적인 목표다. 트럼프 눈에 중국제조2025는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쳐 산업굴기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으로 비친다. 그는 올 2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 이후 “지적재산권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불공적 무역을 바로잡겠다”는 말을 계속 해왔다.

옛 중상주의자들이 금을 국부의 원천으로 본 것은 나중에 경제적 착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기술은 국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원천인 것은 최근 세계화 과정에서 확인됐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평론가인 마이클 로버츠는 최근 칼럼에서 “1980년 이후 세계화로 강화된 자유무역의 과실이 기술력이 강한 몇몇 기업이나 국가에 집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수혜국이 미국이다. 결국 트럼프의 신중상주의는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실제 유럽 최대 중국연구소인 독일 MERICS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국제조2025는 제조업으로 경제를 일군 나라들에 중대한 위협이다. 특히 제조업과 첨단기술 비중이 모두 높은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그래픽 참조).

“관세로 기술굴기 막기는 쉽지 않을 것”

그렇다면 트럼프의 관세폭탄이 중국의 산업굴기를 막을 수 있을까. MERIC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막스 젠글라인은 중앙SUNDAY에 “트럼프 관세는 효과적인 수단은 아니다”고 말했다. 우선 현재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패턴이 좀 달라서다. 중국 기업은 해외 기술을 훔쳐다 내수용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훔친 기술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출 시장에 내다파는 경우가 드물어 트럼프가 추가 관세를 물려봐야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젠글라인은 “트럼프의 관세폭탄이 협상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관세폭탄 말고도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사실상 막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브로드컴이 반도체 칩메이커인 퀄컴을 인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전체적인 흐름을 봐도 중국 기업의 미국내 M&A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2016년 470억 달러 이상이었는데, 지난해엔 300억 달러 선까지 감소했다. 톰슨로이터는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 대신 기술력을 갖춘 다른 나라 기업을 사들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신중상주의가 중국의 산업굴기를 막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젠글라인은 “(트럼프의 압박에도) 베이징은 중국제조 2025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데 한국과 독일 등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는 무역전쟁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중국의 중간재 수입이 줄어 중국제조 2025 못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이래저래 안팎곱사등인 셈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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