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농부의 아들이 품었던 희망사다리 … 그게 방송대였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류 총장은 통일 이후 방송대 방식의 교육이 북한 주민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류 총장은 통일 이후 방송대 방식의 교육이 북한 주민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4일 서울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캠퍼스엔 벚꽃·목련이 만개해 있었다. 국내 국립대 중 유일한 원격대학인 방송대는 지난 정부에서 다른 국·공립대와 마찬가지로 총장 공석 사태를 겪었다. 지난 2014년 7월 학내 구성원들에 의해 총장 후보 1순위로 추천된 류수노(62) 농학과 교수는 3년 5개월여 만인 지난 2월에야 총장에 취임했다. 류 총장의 취임엔 동문의 지지가 힘이 됐다. 8만명의 동문이 그의 총장 임용을 지지하는 데 서명했다.

한국방송통신대 출신 첫 총장 류수노 #농업직 말단 공무원 거친 쌀 박사 #14~90세 재학생, 100세 시대 대비

이날 방송대 대학 본관 총장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류수노 총장은 “취임식 때 동문들이 마치 자기가 총장이 된 것처럼 좋아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감복했고 총장으로서 책무감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는 방송대 학부 출신으로서 이 대학의 첫 총장이다. 학부 출신 중 첫 방송대 교수이기도 하다. 방송대는 1972년 서울대의 2년제 교육 부설기관으로 개교했다가 82년 4년제 학사과정으로 독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65만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지만 152명의 전임교원 중 방송대 학부 출신은 류 총장을 포함해 두 명뿐이다. 류 총장은 “방송대가 없었다면 내 인생에서 희망사다리를 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방송대에 진학한 배경은.
“아버지가 충남 논산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나는 농사를 거들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 9급, 7급 공무원시험을 함께 준비했다. 9급에 먼저 붙어 천안시청 농업직 공무원을 하다가 대학공부에 대한 꿈이 생겼다. 그래서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7급 시험에도 붙어 경북도청으로 옮겨가면서도 일과 학습을 병행했다. 그때부터 평생학습이 몸에 뱄다고 할까. 방송대는 정말 나 같은 이를 위한 대학이다 싶었다.”
방송대 학부 출신의 첫 교수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장을 쥐고 나니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내친김에 충남대에서 작물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촌진흥청에서 쌀 품종 개발연구를 했다. 국비 유학생에 선정돼 일본 나고야 대학과 미국 럿거스 대학에서 연구할 기회도 얻었다. 99년에 방송대에서 교수를 한 명 뽑는다고 하기에 지원했다. 지원자 15명 중에 서울대 출신이 10명이었는데, 결국 내가 임용됐다.”
계속 도전해온 인생 같다.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사회에 그래도 희망과 미래가 있다. 노력하는 이에겐 기회를 준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교수로 임용돼서도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연구했다. 정부 등으로부터 100억원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도 따냈다. 노화 억제, 항암 쌀을 개발했고 국제 특허도 3개나 갖게 됐다.”
대학졸업장의 효용이 예전 같지 않다.
“방송대 초기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주로 왔다. 지금도 물론 방송대는 한 학기 등록금이 30만원대로 저렴하다. 하지만 이제 방송대는 평생교육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자리잡았다. 우리 재학생은 40대, 30대가 가장 많다. 14세부터 90세까지 다 있다. 100세 시대에 대비해 제2, 제3의 인생을 위한 평생교육을 받는 이들이다. 우리 방송대 교수이면서 동시에 우리 학부 재학생인 분이 다섯이나 된다. 미디어영상학과 교수가 농학과 학부를 다니고, 농학과 교수가 영문과 학부를 다니고 있다. 4년제 과정의 23개 학과를 갖추고 있지만 비학위 과정의 프라임 칼리지도 10개에 이른다. 단기에 걸쳐 자격증을 따거나 전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강좌를 하고 있다”
총장으로서 포부는.
“우리의 교육 콘텐트를 보다 많은 국민에 개방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통일 이후에도 우리 대학 방식의 교육은 많은 북한 주민을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하는 데 소중히 쓰일 수 있다. 국민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갖게 하려면 평생교육을 해야 한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