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네 갑 훔쳤을 뿐인데…고등학생, 경찰 조사 후 극단적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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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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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담배 네 갑을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은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학생의 부모는 "아들이 수사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며 "경찰이 아들이 입건된 것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아 아들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5일 세종경찰서 등에 따르면 세종시 한 고교 3학년인 A군은 지난달 30일 집에서 30여㎞ 떨어진 대전의 한 다리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군은 지난 1월 1일 새벽 한 슈퍼마켓에서 친구와 함께 담배 네 갑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불구속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날 검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A군 부모는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아들이 특수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들 친구들로 부터 듣게 됐다고 한다. A군 부모는 연합뉴스에 "경찰은 고등학생인 제 아들을 경찰서에 부르고, 검찰에 송치하면서도 부모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며 "(A군이) 한 번의 실수로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죄송해서 시간이 갈수록 고민하고 괴로워했다는 얘기를 장례를 치르는 동안 뒤늦게 친구들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A군 부모는 "경찰 조사가 시작됐을 시점부터 사건이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아무런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잘잘못을 가려주시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문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이어 "피해액이 1만8000원에 불과하고 우발적인 행위인 만큼 특수절도로 입건하기보다는 훈방했어야 했다"며 "경찰이 고등학생을 조사하면서 부모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만 지켰어도 가슴 아픈 일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A군 부모에게 직접 연락하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세종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A군이 엄마와 통화하게 해준다며 경찰관에게 전화를 바꿔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아니라 A군 친구였다"며 "경찰 범죄수사규칙에 따라 청소년을 조사할 때 보호자에게 연락해야 하지만 A군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고 당시 통화 대상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사건을 넘긴 점은 법적인 절차를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두 명 이상이 함께 물건을 훔칠 경우 액수에 상관없이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해 수사해야 한다"며 "특수절도는 벌금형이 없고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 있어 훈방하거나 청소년 선도심사위원회에 사건을 넘길 수도 없는 사안이라 검찰에 사건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감찰 조사에 착수,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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