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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인생 60년, 마지막 숙제 마친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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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자신의 1호 법안인 바둑진흥법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한 조훈현 9단. 조 9단은 ’한국 바둑 진흥을 위한 밥상은 차려졌다. 바둑계가 법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자신의 1호 법안인 바둑진흥법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한 조훈현 9단. 조 9단은 ’한국 바둑 진흥을 위한 밥상은 차려졌다. 바둑계가 법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바둑 황제’ 조훈현(65) 9단은 한국 바둑 진흥의 일등 공신이다. 1989년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변방이던 한국 바둑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였다. 이후 한국에선 바둑 붐이 크게 일었고, 이창호 9단 등 걸출한 천재들이 탄생하면서 90년대 한국 바둑은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바둑진흥법’ 통과 주역 조훈현 9단 #초등학교 방과 후 바둑수업 활성화 #관련 단체 조직·대회 개최 쉬워져 #국회의원 되니 직장인 삶 알게 돼 #이제는 주말이 너무 기다려져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점차 국내에서 바둑의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중국 바둑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바둑은 위기를 맞았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조훈현 9단은 2016년 8월 ‘1호 법안’으로 바둑진흥법을 발의했다. 2년 7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바둑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조 9단은 간만에 얼굴을 펴고 활짝 웃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 9단을 만나 법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둑진흥법안이 통과됐을 때 기분은.
“60년 바둑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큰 숙제를 마친 것 같았다. 사람이 어디를 가면 뭔가 하나라도 업적을 남겨야 하는데, 국회 가서 월급만 받고 뭐했냐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했다. 다행히 바둑진흥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돼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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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진흥법이 발효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나.
“과거 우리 바둑계는 기업 후원에만 의존해야 했다. 도와달라고 사정해도 그쪽에서 안 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둑진흥법에 따라 정부가 바둑 진흥을 위해 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해야 한다. 지원도 일회성, 단기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둑 보급 측면에서 효과가 클 것 같은데.
“그렇다. 과거보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관련 단체나 팀을 만들기가 쉬워진다. (바둑진흥법 8조에 ‘국가가 바둑 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 초등학교 방과 후 교육에서도 바둑 수업을 열기 쉬워지고, 바둑 대회를 개최하기도 쉬워지는 등, 바둑 보급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바둑진흥법 통과까지 어려웠던 점은.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까지도 법을 만든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막연하게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쉽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과정이 복잡했다.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사람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국회에 들어온 걸 후회한 적도 있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기원에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둑만 하다 전혀 다른 세계에 오니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또 평생 자유롭게만 살다 보니 매일 출퇴근하기도 매우 어렵더라.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혼잡한 주말보다 한산한 평일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이제는 주말이 너무 기다려진다.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월요일을 싫어하고 금요일을 좋아하는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이해하게 됐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작년에는 한국 바둑이 재미가 없었는데, 요즘 농심배 등에서 여러모로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기분 좋다. 이 기세를 몰아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서 잘 해줬으면 좋겠다. 옛날 같으면 내가 직접 했겠지만(웃음), 이제는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는 게 내 일인 것 같다.”
요즘도 바둑을 두나.
“가끔 심심할 때 인터넷으로 속기 바둑을 둔다. 그런데 시합을 떠난 지 오래돼서 그런지, 요즘에는 단수도 잘 안 보인다. 인공지능(AI)이 나오는 마당에 나는 완전히 구닥다리가 된 것 같다(웃음).”
한국 바둑계에 바라는 게 있다면.
“이제 바둑 진흥을 위한 밥상은 차려졌다. 한국기원 등 바둑 관계자들이 법안을 잘 활용해주면 좋겠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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