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꼬인' 교육부 영어마을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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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이 3일 개장했다. 원어민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어마을 시설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경기도가 추진해 온 '영어마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달 31일 "영어마을을 그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마을 하나 만드는 데 2000억~3000억원이 들고 운영에도 매년 비슷한 돈이 들어가는데 이는 도내 각 학교에 1억원 이상 지원할 수 있는 규모"라며 "각 학교에 1억원씩 지원하면 원어민 교사 3명을 채용할 수 있고,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원어민 교사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경기도의 역점사업인 파주 영어마을의 개장을 사흘 앞두고 나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영어마을을 포함한 '영어 체험 프로그램' 확대를 적극 추진해 온 사실이 3일 확인됐다. 결국 김 부총리는 자기 부의 방침과는 전혀 반대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 파주 영어마을을 개장한 경기도 측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돕기 위한 '선거용' 발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 "확대하라"던 교육부=지난해 5월 교육부는 '영어교육 활성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는 "영어체험 프로그램 확대 운영을 위한 기반이 부족하고 외부 인적자원 활용이 미흡하다"며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영어체험학습센터를 적극 설치하겠다"고 했다.

영어체험학습센터는 ▶서울.경기도 등의 영어마을▶제주 외국어학습센터 등 신축 및 기존 시설 리모델링▶학생교육원.영어캠프 등이라고 돼 있다. 영어마을 확대 계획이 분명히 들어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2월 13일 '2006년도 주요 업무 계획'에서는 2010년까지 모든 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한 명씩 배치하고, 집중적인 영어학습을 위한 영어체험학습센터 설치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우선 250억원의 예산까지 배정했다.

◆ "오해였다"는 해명=김 부총리의 영어마을 중단 발언이 나온 뒤 교육부는 3일 해명자료를 냈다. '원어민 영어교사의 배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부 뜻이 잘못 전달됐다'는 것이다.

교육부 엄상현 기획홍보관리관은 "영어마을을 만드는 데 2000억~3000억원이 들고, 연간 운영비도 비슷하다는 김 부총리의 발언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도 검토돼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의 영어마을 설립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닌 순수한 뜻에서 비용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방선거를 겨냥한 발언이 절대 아니다"라면서 "교육부의 영어체험학습센터 설치 확대 계획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 경기도의 반박=경기도는 "영어마을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김 부총리가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부총리는 영어마을 운영비로 학교당 1억원을 지원하면 원어민 교사 3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원어민 교사 1명을 고용하는 데 연간 6000만원이 소요되고 적격자를 채용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면서 "김 부총리는 지난해 9월 영어마을 안산캠프를 방문할 당시 '중앙정부가 할 일을 경기도가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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