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떠난 조국땅 밟았지만 …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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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가 공항에 도착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박종근 기자

'어머니'는 분명 '여자'보다 강했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29년 전 아들과 떨어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떠난 조국이었다. 그동안 몇 번 이 땅을 밟았지만 그때마다 조국은 그녀에게 아픔만을 안겨줬다. 3년 전 거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이제 한국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김영희(59)씨에게 이번 방한은 분명 달랐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들로부터 '어머니와의 약속(Promise to mother)'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선물로 받은 동반 방한이었다. 3일 인천공항. 그처럼 자랑스러운 아들의 곁에서, 그녀는 눈물 대신 환한 웃음을 보였다. 조국 앞에 당당했고, 세상에 당당했다. 그녀는 그런 인생을 걸어 왔다.

하인스 워드가 성장한 미국 조지아주 포레스트파크 인근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보다 '워드 엄마'라는 호칭으로 통했다. 동네 사람들이 김영희라는 이름은 몰라도 워드 엄마가 누군지는 알았다. 워드 엄마라는 그 한마디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워드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는 김영희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아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육이 근본'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워드는 어머니의 신념 아래 바른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자랐다. 운동도 잘했지만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할 무렵 워드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 워드 시니어가 찾아왔지만 워드는 '만나지 않겠다'며 돌려보냈다. 그 사연은 미국 최대의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소개되기도 했다. 워드는 성공한 미식축구 선수이기 이전에 세상에 곧고 당당한 '어머니' 김영희씨의 아들이었다.

워드는 인터뷰 때마다 "어머니는 나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해, 오늘의 영광을 위해 김영희씨는 29년을 참고 견뎌왔는지 모른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워드가 4년간 2759만 달러(약 270억원)라는 거액에 팀과 재계약을 하자 아들을 붙들고 울며 기도했다. "우리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라면서.

아들이 수퍼스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인근 고교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국에 와서도 화려한 환영행사보다는 아들과의 오붓한 시간, 소박한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원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태어난 병원을 함께 찾고, 한복을 입고, 민속촌과 경복궁을 둘러보고 싶어한다. 대나무처럼 강하지만 때론 갈대보다 더 부드러운, 외유내강. 한국의 어머니 바로 그 모습이다.

이태일 기자 <pinetar@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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