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29」1년<1>|민주화 새장 연"조용한 혁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 1주년이 다가왔다. 불과 1년전의 정치상황과 오늘을 비교할때 6·29선언은 우리 헌정사의 중대한 전환점이었음에 틀림없다.
1년간의 변화를 놓고 역사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이른감이 없지 않으나 6·29선언으로 인해 우리가 겪은 새로운 정치일정의 전개, 의식과 생활의 변모는 가위 혁명적 경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같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온 일들이라 아직은 어리둥절해 하거나, 아니면 변화의 템포나 의미를 지나치게 당연시할 수도 있으나 1년전 그날을 돌이켜보면 6·29선언은 분명히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드라마였다.
세상을 흥분과 경악속에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직전까지 적대관계였던 김대중씨마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느끼게 한다』고 했던 6·29. 우방정부는 「영웅벋 결단」이라고 했고 외신은 「명예혁명」이라고까지 타전했었다.
그후 우리는 우여곡절끝에 새 헌법을 만들어 대통령·국회의원선거를 치렀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6·29선언이 가져온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지금도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겪고 있다.
6·29선언은 노 대통령 자신이 밝혔듯이 국민의 요청과 역사의 요구에 부응한 산물이자국민에 대한 「항복」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그때나 지금이나 그 정신은 국민의 것이자 역사의 것이며 지향하는 요체는 권위주의 청산과 민주시대 개막에 있다. 비록 노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더라도 그 추진을 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포기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데 이 선언의 참뜻이 있다.
우선 6·29선언은 그 선언이 있기 전까지의 상황을 기준으로 볼때 중요분야에서 획기적인 개선과 진전을 가져왔다.
선언의 구체적 실천목표인 8개항중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 대통령선거법개정, 김대중씨 사면·복권과 시국사범의 대거석방은 거의 실천됐다.
또 국민의 기본권 신장과 인권침해사례 근절, 언론자유의 창달, 정당활동보장과 타협정치 풍토조성 등 3개항은 야당조차시비를 걸기 어려울 정도로 급진전한게 사실이다.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것중 지자제와 교육자치제의 조속실시는 정부·여당만의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야당도 지연을 양해한 사항이며 실시시기를 앞당기는 문제는 여야합의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때문에 8개항중 약속이행이 안됐다고 굳이 지적하자면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와 비리·모순의 시정작업이라 볼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계속 추진중이라고 볼 수 있는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6·29선언의 정신과 성취도에 일치된 평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 선언의 진정한 의미가 8개항의 계량적 진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청산과 진정한 민주화를 통한 권력의 정통성 확립, 균형잡힌 복지경제, 안정된 개방사회를 달성하겠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6·29직후 노 대통령은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체제로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하면서 몇가지 걱정을 토로한바 있다.
『전환이 흑백논리적 대결을 통해 뺏고 뺏기는 한풀이 방식으로 유도되면 혼란과 보복이 얽히고설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민주화는 험난해지고 만다. 끊임없는 갈등·반복과 투쟁의 뒤얽힘속에 자칫 잘못하면 사회 전체가 중심을 잃고 떠있는 상태로 빠진다. 욕구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구가 채워치지 않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넘쳐흘러 사회적 불안과 동요는 마냥 커질 것이다. 여기에 좌익폭력혁명세력의 급진행동과 북한의 교란 전술이 합세되면 우리 국민 모두가 애써 가꾼 삶의 공동체가 떠내려갈 위험에 빠진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야당이 집권하면 이같은 사태가 오며 자신만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소위 안정이냐, 혼란이냐는 양자택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6·25에 대한 평가가 구구각각인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좌경폭력세력의 위협이 날로 커지고, 노사분규가 가열되고, 물가안정이 깨지고, 도처에서 법과 질서가 무력해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이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결코 쉽지도 않고 자동적일수 없는』민주화의 진통인지, 아니면 『떠내려갈 위험』인지에 대해 국민들의 시각이 크게 갈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금이 혼란이냐, 참을 수 있는 불가피한 과정이냐, 그리고 통제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퇴영을 가져오는 것이냐에 따라 6·29선언에 대한 앞으로의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백년 쌓여온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란 새로운 정치문화를 향유하자면 이 정도의 터널은 어차피 통과해야하지 않느냐는 것이 긍정·낙관론자들의 지론이다. 역사의식을 갖고 인내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시간을 좀더 주면 혼란은 극복되고 민주화는 진전된다는 시각이다.
이같은 낙관론자들은 지금을 「함박눈이 오는 계절」에 비유하면서 섣불리 빗자루를 들기보다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고 눈은 반드시 그친다고 말한다. 심지어 각계의 욕구 분출과 백가쟁명도 민주화의 한 과정이고 분명히 터널의 끝이 보이며 그 지점이 6·29의 목적지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지금이 혹자경제의 계속 발전, 물가안정고수와 성장의 지속이라는 안정의 기본틀을 깨뜨려 자칫 남미의 몇몇 나라처럼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지 모르는 「마의 경계선」에 처해있다고 보고있다.
민주화가 안돼 사회혼란이 오고 그 결과 경제가 침체된다는 노 대통령의 6·29식 처방은 허구임이 입증됐으며 이대로 가다간 민주주의는커녕 법치주의까지 깨져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있다.
통제되지 않은 민주화가 만병통치약이 될수 없으며 노사분규·원절상으로 경제가 겪고있는 가혹한 시련은 차츰 좌우투쟁의 양상을 띠어가는 정치적 갈등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리 전체를 패배시킬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가져오는 제도권의 힘을 잃지않고 5공화국 유일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물가안정→수출증대→경제성장→국제수지흑자→환율안정→물가안정」의 선순환을 지켜 6·29선언을 완성해 줄것을 바라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과 6·29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노 대통령이 비관론을 어떻게 극복해 낙관론쪽으로 현실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국민들도 성급히 장래를 단정하기에 앞서 노 대통령에게 시간을 주고 참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전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