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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_this week] 치마 입은 남자, '미투' 셔츠 입은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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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김혜순의 한복 패션쇼를 시작으로 24일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클로젯’ 피날레 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일주일간 뜨겁게 달구었던 2018FW헤라서울패션위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국내외 유명디자이너를 중심으로 39차례의 쇼가 펼쳐진 서울패션위크에서 2018 FW 주요 패션 트렌드를 꼽아봤다.

18FW헤라서울패션위크 리뷰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표현한 그림 '게르니카' 등에서 영감을 받아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블라인드니스' 쇼의 한 장면.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표현한 그림 '게르니카' 등에서 영감을 받아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블라인드니스' 쇼의 한 장면.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성의 경계를 허물다, 젠더리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젠더리스(Genderless) 트렌드는 전 세계 패션 업계의 메가 트렌드다.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도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핑크와 라벤더 등 부드러운 파스텔톤을 남성복에 적용하는 단순한 시도부터 남성복의 테일러링을 여성복에 적용하는 방식까지 소재와 패턴·장식·컬러·스타일링 등에서 남녀의 경계는 사라졌다.
디자이너 박승건의 ‘푸시 버튼’ 쇼에서 남자 모델들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워킹에 나섰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스루 레이스 블라우스와 코르셋 장식의 팬츠, 하이힐은 남성의 몸 역시 슬림함을 돋보이게 했다. 반대로 여성복에서는 매니시한 재킷과 넓은 통의 보이프렌드 진, 와이드 팬츠 수트 등이 등장했다.

남녀의 경계를 무너뜨린 푸시 버튼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남녀의 경계를 무너뜨린 푸시 버튼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장광효 ‘카루소(CARUSO)’의 남성 모델 역시 여성복을 연상시키는 시스루 블라우스에 카키색 팬츠와 워커를 매치했다. 재킷에 주름치마를 입는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편견을 깨뜨린 의상이 대거 등장했던 카루소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남성복과 여성복의 편견을 깨뜨린 의상이 대거 등장했던 카루소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쿠만유혜진(KUMANNYOUHYEJIN)’의 유혜진 디자이너는 남성복 비스포크 수트 테일러링을 여성복 정장과 코트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젠더리스를 실현했다. S라인을 따라 흐르는 듯한 여성복 특유의 곡선이 아니라, 마치 여성이 입은 남성복처럼 건축적인 스타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성복 브랜드이지만 남성복 못지 않게 오버사이즈 의상들이 등장했던 쿠만유혜진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여성복 브랜드이지만 남성복 못지 않게 오버사이즈 의상들이 등장했던 쿠만유혜진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오버사이즈 트렌드는 계속된다

복고 트렌드의 영향일까. 몇 시즌째 계속되는 오버사이즈 트렌드가 여전히 서울패션위크를 물들였다. 특히 이번에는 오버사이즈의 극대화라 할 만하다. 뭐든지 크단 얘기다. 부풀린 소매와 과장된 실루엣, 커다란 로고, 바닥에 끌릴 만한 크기의 가방, 어깨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모자, 슈퍼 사이즈의 패딩 등이 그것이다.
장형철 디자이너의 ‘오디너리 피플’은 온통 오버사이즈의 향연이었다. 실제 어깨선보다 한참이나 떨어진 붉은색 재킷을 입고 광택이 돋보이는 에나멜 가죽 팬츠를 입은 모델이 등장했는가 하면, 셔츠와 코트의 소매가 손끝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상의가 끊임없이 런웨이를 채웠다.

대부분의 의상들이 실제 체형보다 한층 과장되게 오버사이즈로 표현된 오디너리 피플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대부분의 의상들이 실제 체형보다 한층 과장되게 오버사이즈로 표현된 오디너리 피플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박환성의 ‘디앤티도트(D-ANTIDOTE)’에서도 오버사이즈 스타일링이 돋보였다. 가수 현진영의 노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서 영감을 받아 90년대로 회귀한 듯한 올드스쿨 힙합 룩을 선보인 쇼에서는 빅 로고가 적용된 후디, 오버핏의 스웨트 셔츠, 커다란 패딩 베스트, 야전 상의와 재킷 등이 등장했다.

90년대 힙합 룩을 연상시키는 디앤티도트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90년대 힙합 룩을 연상시키는 디앤티도트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도시’를 테마로 잡은 디자이너 남노앙의 ‘노앙(NOHANT)’ 컬렉션에서는 ‘볼륨’과 ‘오버사이즈’ 두 가지 문법이 가장 돋보였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에서 잘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패션 속 위트’를 비일상적일 정도로 과장된 볼륨감에서 찾은 듯하다. 몸 전체를 폭 감싸듯 두른 담요 스타일의 패딩과 여러 겹을 겹쳐 입어 실루엣 자체를 과장시킨 아우터, 상하의 할 것 없이 모두 오버 사이즈인 재킷과 와이드 팬츠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등판 전체를 감싸고 허리에 닿을 만큼 커다란 후드 디테일과 이렇게 커도 될까 싶을 만큼 커다란 가방은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내기 충분할 만큼 위트가 넘쳤다.

과장된 볼륨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위트를 테마로 한 노앙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과장된 볼륨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위트를 테마로 한 노앙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패션에 메시지를 담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이를 스타일링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이 두 가지 본연의 역할을 넘어 또 하나 요즘 디자이너들이 열광하는 것이 있다. 바로 메시지 전달이다. 트렌드를 넘어 디자이너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해 이 자체를 스타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도 돋보였다.
환경오염과 자연재해, 생태계 붕괴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자 ‘세이브 더 울프(save the wolf)’를 테마로 잡은 빅팍(BIG PARK)이 대표적이다. ‘늑대를 구하라’라는 직관적인 메시지가 그대로 반영된 늑대 프린트의 선명한 레드 코트와 체크 시리즈의 아우터들, 메시지를 정확한 문자로 표현한 스웨트 셔츠 등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인디언처럼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년·소녀들은 모던 히피를 상징하는 듯했다.

늑대를 주제로 환경보호 메시지를 표현한 빅팍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늑대를 주제로 환경보호 메시지를 표현한 빅팍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신규용·박지선 듀오 디자이너가 선보인 ‘블라인드니스(BLINDNESS)’는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 듀오 디자이너는 쇼 노트에서 스페인 내전의 슬픔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와 ‘한국 전쟁 대학살’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임을 명시했다. 군복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밀리터리 패딩 의상들에 꽃문양과 러플·진주 등의 섬세한 장식을 더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밀리터리 패딩 점퍼를 응용한 상의에 꽃문양의 이너웨어를 입은 모델들은 얼굴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이런 상반된 이미지의 스타일링은 전쟁과 평화의 메시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아름다움과 개성을 표현하는 듯 했다.

밀리터리풍의 패팅과 꽃무늬로 전쟁과 평화를 표현한 블라인드니스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밀리터리풍의 패팅과 꽃무늬로 전쟁과 평화를 표현한 블라인드니스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 지춘희의 ‘미스지콜렉션(MISS GEE COLLECTION)’의 오프닝 의상들에는 ‘미투(ME TOO)’ 메시지가 담겼다. 해시태그를 붙인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를 비롯해 말하다(Speak), 신뢰(Trust), 존엄(Dignity) 등의 폰트가 적힌 티셔츠가 등장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리프레시(Refresh)’를 테마로한 이번 컬렉션의 키 컬러인 그레이(gray) 의상들 사이로 확고한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가 다양한 실루엣의 팬츠와 스커트 등과 함께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투'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선보인 미스지콜렉션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미투'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선보인 미스지콜렉션 쇼 [사진 18FW 헤라서울패션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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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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