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젊은이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는 또 한 젊은이의 죽음을 본다. 『광주는 살아 있다』고 외치며 온 몸에 불을 지른 대학생이 끝내 숨지고 말았다. 벌써 이런 죽음이 몇 번째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죽음 앞에 가슴 아파하고 있어야 하는가. 무슨 말로 이런 죽음을 말려야 하는가. 그들은 바로 우리의 형제와 같은 세대이고 우리의 아들 같은 젊은이 들이다.
우리는 짐작 할 수 있다. 오늘의 이 답답한 현실은 젊은이들에겐 더없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처럼 목이 타게 외쳐 온 민주회복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가. 아니, 정말 민주주의는 되어 가고 있는가. 광주사태는 그 동안 온 나라가 가슴을 치며 떠들어 온 일인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남북대화는 변 죽만 울려 놓고 새롭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도대체 이 민족의 앞날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새 공화국은 무엇이 다른가. 정치인들마저도 그 얼굴에 그 얼굴이다. 우리에겐 희망과 미래가 과연 있는가. 역사는 악의 순환만 거듭할 작정인가.
젊은 혈기에, 하루가 새로운 나날에, 우리의 현실은 진흙탕 속에서 답답하고 암담하고 절망적이고, 모두가 믿을 수 없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세상일하나 하나는 음모와 결탁과 이기 아닌 것이 없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죽음의 항변밖에 없다고 판단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순간 세상일이란 대개 그렇게 시종 되고, 기다리는 가운데 역사는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미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반복해 왔고 지난 어두운 시절들은 그것이 얼마나 위선적인 논리인가를 확인해 주었다. 실로 독선과 독단의 정치는 인류역사상 가장 보편 타당한 논리까지도 무력하게 만든 사실에 우리는 또다시 전율하게 된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대이며 지금 그런 현실이 젊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는 참담한 죽음 앞에선 한가한 언어에 지나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의 언어가 없다는 것을 오늘의 젊은이들은 인정해야 한다. 역사는 산 사람들이 이끌어 가야 할 수레다. 그 바퀴가 굴러가야 할 길이 험하고 어려울수록 더 많은 힘과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 힘과 지혜와 용기의 주체는 누구인가. 젊은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 의지와 내일의 주도자라는 책무와 신선한 생각의 공급자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 떠넘길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또 이것은 젊은이들 자신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회피한다면 그 이상의 무책임이 없다. 젊은이들은「시쉬포스」의 바위를 굴리듯 무거운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포자기와 절망, 좌절감만큼 무서운 법은 없다. 그것은 젊음의 거부이며 자기의 방기다. 고뇌하지 않는 젊은이는 젊음이랄 수 없다. 젊은이는 끊임없이 고민하며, 끊임없이 방황하며, 또 끊임없이 극복하는 가운데 성숙이 있고 인류의 역사는 그런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의 극복 속에 발전이 있는 것이다.
현실이 보잘것없는 것이라면 그런 현실을 극복해야 할 사람이 바로 젊은이들이다. 그 해답을 죽음에서 찾는다면 영원히 해답은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어버이의 심정으로, 한 이성인의 양식으로 호소한다. 젊은이의 죽음은 이제 끝나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