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론은 시장친화, 각론은 반시장·경쟁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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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특강에서 대통령이 전하는 메시지는 혼란스럽다. 총론은 시장친화적인 정책방향을 추구한다면서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반시장적.경쟁제한적 주장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대통령 자신이 규정한 대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입장이 혼재돼 있는 것이다.

대외개방 문제와 외국 자본에 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은 시장원리를 지상원칙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접근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의료.법률.교육.회계 서비스에서 개방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경쟁해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자"고 역설했다. 또 외국 자본의 국부 유출 논란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시장원리를 존중하겠다"고 단언했다. 그야말로 자유시장경제 원칙의 신봉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양극화, 부동산 대책, 대기업 규제,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시장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양극화가 장기적으로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그 해법으로 적극적인 분배정책을 제시한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면서 돈 많은 사람이 많이 내서 복지지출에 더 쓸 수 있도록 생각을 바꾸자고 하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은 더욱 혼란스럽다. 이 정부 들어 부동산값이 14%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느닷없이 부동산값에 거품이 빠지면 위험하니 부동산 값 안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동산값 안정대책에 시장원리에 맞는 공급확대책 대신 반시장적인 세금 중과와 재건축억제책을 총동원하는 이유에 대해선 말이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산업 분리정책 등 원천봉쇄적인 대기업 규제책에 대해선 기업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준다면서도 당장 풀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교육시장을 개방하자는 노 대통령은 국내 교육제도에 대해선 철저한 평등주의자로 돌변한다. 그는 자율과 경쟁원리를 표방하는 대학의 요구에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정부 기능의 확대에 대해선 확고한 신념을 가진 듯하다. 그는 "정부의 할 일이 많고 많은 돈이 필요하다"면서 "한국에는 큰 정부가 없다"고 강변한다. 대통령은 "저소득층이 평등에 대한 요구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부는 내년 예산에 복지지출을 당초 계획보다도 늘려 잡았다. 대통령 스스로가 복지와 분배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이면서 평등에 대한 요구를 낮추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같은 인식의 혼란은 정책의 충돌과 혼선으로 귀결된다. 사안마다 달라지는 모순된 입장과 편의적인 처방으로는 국민과의 소통도 곤란하고 정책의 성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