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의 윤활유역할 하겠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밀어붙이기와 극한적 반대의 정치를 털어버리고 소수의견과 다수의견이 잘 융화되도록 조정하여 원만한 의회운영·정국운영이 되도록 새정치판의 윤활유 역할을 하겠읍니다.』
30일 13대국회 첫 의장으로 선출된 김재순의원의 다짐이다.
여소야대의 새로운 구도에따라 어느때 보다 역할이 주목되는 국회의장자리에 앉아 김의장은 정당간 의견조정과 타협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다.
반백에 시원한 이마, 서글서글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 다소 처진듯한 두툼한 양볼에서 금방 불호령이 떨어질듯 무서움이 깃들여 있는가 하면 모두를 포용할듯한 화사함도 보이고 있다고
야당인사로 정계에 발을디뎌 여당외 핵심부진입- 여당공천 탈락-정계은퇴-의장 복귀등에서 볼수있듯이 그는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치재개와 동시 의장을 맡게된데 대한 소감을 말해주십시오. 『나이탓도 있겠지만 두달전까지만 해도 이런자리는 물론 정계복귀 자체를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읍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이자리에 서게 됐다고 할까요. 감회가 남다르군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민주정치의 길에서 일탈해본 적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정계를 떠난게 유신이있던 바로 그날이니까요.』
-13대국회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집권여당이 의석수 과반이 안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으나 나는 그렇게 안봅니다. 의석분포가 「황금분할」을 이뤘다고 봐요. 의원 2백 99명이 4천 3백만 온 국민의 각계 각층을 골고루 대표하고있어 전국민이 모두 참여한 기분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내린것 같은 4당 분포인데 조선조의 4색당파를 생각하는것은 잘못입니다.
한국정치의 바탕은 △정통성이 있고 △자유민주주의를하고 △자유경제체제를 유지해야하며 △남북대치상황상 국군의 신뢰를 받아야 하고 △평등개념을 존중해야하는데 여야 모두 이러한 인식을 같이하기 때문에 정국전망에 낙관하고 있읍니다. 타협에의해 잘 풀려나가리라 봅니다.』
-국 회를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의장도 1명의 의원에 불과합니다. 의원 개개인에 공동책임이 있는거죠. 의장은 사회봉을 잡는게 책무인데 공정한 사회자로서 품격도 가져야 되겠죠. 권위주의는 없어져야하나 권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야간 중재자 역할도 외면할수 없겠죠. 지난날엔 다수당의 정책을 다수당 출신국회의장이 그대로 통과시키는 역할만 해왔는데 이젠 본회의에 올라오기 전부터 정당간 의견조정과 타협이 이뤄지도록 힘쓰겠읍니다.』
-야당의 3총재와는 교분이 두텁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한때 「거부」 하는 소리가 들렸나요.
『내 부덕의 탓이죠. (쑥스러운듯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정치는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더불어 사는기술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병법심리에 젖은 정치를 하다보니 야당도 그에 젖어 전부 아니면 전무의 흑백논리에 빠져있읍니다. 그런의미에서 이젠 정말 병법심리 추방에 의한 군정종식을 해야할 때라고생각합니다.』
서울대 상대 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겸 전시 연합대학 총학생회장으로 피난 부산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추진에 반대운동을 벌이다 3개월 투옥된것이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 몸을 담게된 인연이다.
4·19후 양구에서 5대 의원으로 당선, 외무·재무 정무차관을 지냈으며 5·16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1년여 옥고를 치른뒤 혁명주체세력과 손을 잡아 공화당 창당발기인으로 변신, 6,7,8대의원과 공화당부총무·상공위원장·대변인·재정위원장·원내총무를 역임했다. 유신직후 9대땐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 충격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대신 유정회1기 (3년) 로 지명됐으나 단 하루 출석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0대 무소속으로 출마, 낙선한뒤 『샘터』 잡지 일에만 열중하다 지난해 4·13철회를 주장하는 글을 쓴이후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던 노태우대통령과 자주만나 정국에 관한 조언을 한 것이 인연이 돼 민화위를 거쳐 중직을 맡게됐다.
부인 이룡자여사 (56) 와 4남. 81세의 노모를 모시고 있다. <허남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