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소리 없는 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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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모차르트의 도시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는 간판으로 유명한 게트라이데 거리가 있습니다. 문맹이 많았던 중세시대 사람들을 위해 그림으로 그렸던 간판들이 이제는 명물이 된 것이라 하는데, 반드시 장인이나 예술가가 만들도록 한답니다. 심미적 요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도시에 조금이라도 유명한 상권에 가보면 먼저 현란하고 어지러운 간판들이 눈을 찌푸리게 합니다. 빽빽이 차 있는 형광색의 간판들은 뜨내기손님의 주목을 끌고 싶어하는 호객의 인플레이션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업소의 간판이 크면 다른 업소는 묻히게 됩니다. 결국 경쟁하다 보면 건물의 외벽은 요란한 사인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뒤덮여 버립니다.

최근 제주도의 유명 식당이나 편집숍들은 아주 작은 간판을 가지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나마도 음각으로 표현되고 색이 바랜듯한 낡은 느낌이라 가까이 가서 보지 않는 한 읽기도 어렵습니다.

빅 데이터 3/9

빅 데이터 3/9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며 업소를 찾는 의사결정이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곳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명성을 알아보고 가는 것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요란한 간판으로 멀리서 한눈에 알아보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요행히 인지되어도 평판이 좋지 못하다면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합니다.

어차피 올 분들은 블로그에서 알아보고,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하고, 먼저 온 이들의 후기를 읽고 옵니다. 호텔업에서 말하는 지나다 걸어 들어온 손님(walk-in guest)이 아니라, 오고 싶어하는 충성스러운 손님 대상으로 장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천객이 만래하길 바라는, 콘텐츠에 자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도심의 요란한 간판은 한국 사교육을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인 “일어서서 영화 보기”와 같습니다. 극장에서 앞자리 사람이 일어서면 뒤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한 경쟁에 서로 매달린 결과는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모두의 손해로 이어집니다.

간판들의 아우성은 우리 눈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내실 없이 경쟁하는 우리 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여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이제는 “다 같이 앉아서 영화 보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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