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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영국 여왕이 처음으로 런던컬렉션에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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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가장 주목도가 떨어졌던 런던이 달라졌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부터 닷새간 열린 런던패션위크는 시작 전부터 여러 가지 관전 포인트를 갖추고 패션 피플의 눈길을 끌었다. 단지 한계절 앞선 트렌드 제시만이 아니라, 패션계의 다양한 변화를 감지할 만한 이슈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가 실렸다. 이번 시즌 하이라이트를 정리했다.
글(런던)=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연합뉴스, 영국패션협회, 각 브랜드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열린 버버리 컬렉션의 피날레 장면.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이끄는 마지막 무대로 이번 런던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 런웨이를 무지개로 물들였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열린 버버리 컬렉션의 피날레 장면.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이끄는 마지막 무대로 이번 런던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 런웨이를 무지개로 물들였다.

베일리 바이 바이, 티시 웰컴

마지막 유산은 무지개였다.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17년간 머물던 브랜드를 떠나며 마지막 컬렉션에서 화합과 포용, 성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겼다.
무지개는 거의 모든 의상에 떠올랐다. 모델 애드와 애보아가 빨주노초파남보가 들어간 화이트 롱스커트를 입고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7년 전 베일리가 발굴한 모델 카라 델레바인은 레인보우 레이저 스펙트럼 조명 속에 무지개 퍼 망토를 입고 나타나 인상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베일리는 마지막까지도 버버리의 전통 안에서 변화를 꾀했다. 이번엔 브랜드 고유의 체크에 빨주노초파남보를 섞은 레인보우 체크를 선보였다. 버버리는 이후 새로운 체크에 대해 “베일리 ‘이후’에도 고이 남아 쓰일 것이며, 패션 브랜드가 세계와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화답했다.
2001년 버버리의 디자인 수장을 맡으면서 라이선스 관리에 허덕이던 트렌치 코트 회사를 글로벌 브랜드로 재도약시킨 베일리. 그의 뒤를 이을 주인공은 패션계의 설왕설래와는 달리 예상 외 인물이었다. 1일 버버리는 2005년도부터 2017년도까지 지방시를 이끌던 리카르도 티시를 후임으로 발표했다. 이미 제이지, 카니예 웨스트 등 대중 스타와의 협업 경험이 있는 티시가 최근 스트리트 무드를 강하게 반영해 가고 있는 버버리에서 어떤 비장의 카드를 내밀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재미도 의미도 챙긴 런던패션위크 하이라이트

엘리자베스 여왕 패션쇼 깜짝 등장

영국패션협회(BFC) 관계자조차 전혀 몰랐을 정도로 극비에 이뤄진 이벤트였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일 신예 디자이너 리차드퀸의 패션쇼에 참석했다. 여왕의 패션쇼 참석은 역대 처음. 미국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옆 자리, 푸른 벨벳 쿠션이 놓였던 의자 위로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차드 퀸의 패션쇼를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왼쪽). 미국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와 함께 쇼를 관람했다.

리차드 퀸의 패션쇼를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왼쪽). 미국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와 함께 쇼를 관람했다.

이 쇼의 주인공인 리차드퀸은 데뷔 3년 차인 신예 중 신예. 대학(세인트 센트럴 마틴) 졸업 작품이 바로 2016년 H&M 디자인상을 받고, BFC가 지원하는 신진 디자이너 후원 프로그램인 ‘뉴젠’에 꼽히면서 실력파 루키로 주목받고 있다. 독특하면서도 우아한 프린트가 최대 강점이다.
여왕이 그의 쇼를 찾은 건 퀸이 올해 처음 신설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영국 디자인상’의 첫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퀸은 수상 소식과 함께 여왕의 참석을 알고 원래 준비한 것보다 10벌 정도 의상을 추가했다고 한다. 여왕의 느낌을 담은 화려한 프린트의 스카프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다양한 프린트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모델들이 등장한 리차드 퀸의 컬렉션.

다양한 프린트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모델들이 등장한 리차드 퀸의 컬렉션.

물 오른 런던 브랜드 3총사

런던 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이름 을 빛내고 있는 디자이너 3인방의 무대. (왼쪽부터) J.W. 앤더슨은 남녀 컬렉션을 합쳐 실용적인 디자인을, 크리스토퍼 케인은 ‘섹스’를 주제로 삼아 다양한 란제 리룩을 선보였다. 5월 해리왕자와의 결혼을 앞둔 메건 마클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알려진 에르뎀은 브랜드 고유의 꽃무늬 의상들을 등장시켰다.

런던 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이름 을 빛내고 있는 디자이너 3인방의 무대. (왼쪽부터) J.W. 앤더슨은 남녀 컬렉션을 합쳐 실용적인 디자인을, 크리스토퍼 케인은 ‘섹스’를 주제로 삼아 다양한 란제 리룩을 선보였다. 5월 해리왕자와의 결혼을 앞둔 메건 마클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알려진 에르뎀은 브랜드 고유의 꽃무늬 의상들을 등장시켰다.

버버리·폴스미스·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잇는 런던의 새로운 대표 주자를 꼽자면 이견이 없다. 바로 이들 J.W.앤더슨, 크리스토퍼 케인, 에르뎀이다. 세 브랜드는 모두 2005~2008년 비슷한 시기에 출발해 이제는 어엿한 런던 출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최근의 행보도 빛난다. J.W. 앤더슨의 디자이너 조나단앤더슨은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2017년 유니클로와의 협업 파트너로서, 크리스토퍼 케인은 어글리 슈즈의 대표 디자이너로, 에르뎀은 2017년 H&M과의 협업을 통해 에르뎀은 2017년 H&M과의 협업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이번 컬렉션에서 J.W. 앤더슨은 각각 진행하던 남녀 컬렉션을 하나로 합치고 보다 일상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기능성을 더한 점퍼와 타프타 소재 드레스가 혼재했지만 이를 물 흐르듯 이어내는 스타일링이 되려 빛났다. 꽈배기 니트, 도너츠모양 액세서리, 토끼 모양 폼폼 장식 등이 위트를 더했다.
크리스토퍼 케인의 경우 ‘미투’로 세계가 성 문제에 민감한 요즘, 전면에 ‘섹스’를 내세웠다. 1972년 나온 알렉스 컴포트의 『조이오브 섹스』를 모티브 삼아 자유롭고 주체적인 섹스를 다뤘다. 레이스를 다양하게 변주한 란제리룩을 보여주는 한편 ‘더 즐겁게(More Joy)’ 같은 슬로건을 담은 티셔츠로 눈길을 끌었다.
에르뎀은 1910~20년대 활약한 미국 댄서로 영국 공작과 결혼한 아델 아스테어에서 영감을 받은 쇼를 선보였다. 자기 일에 열정이 넘쳤지만 은퇴 후 귀족의 삶을 즐긴 그의 이야기가 바탕.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에르뎀의 팬이자 할리우드 배우로 해리 왕자와 약혼한 메건 마클와 겹쳐진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컬렉션은 에르뎀의 시그너처라 할 만한 꽃무늬 프린트를 다양하게 변주했다.

기억해 두세요, 떠오르는 디자이너들

‘신진들의 인큐베이터’. 런던패션위크의 대표적 수식어다. 최근에는 BFC가 ‘작정하고’ 후원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유독 주목을 받는다. 뉴젠-패션트러스트-BFC/보그 디자이너 패션펀드로 이어지는 이 후원 프로그램들은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패션위크에서 ‘뭔가 더 새로운 것’을 찾는 바이어·미디어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패션위크에서도 떠오르는 디자이너들의 무대가 눈길을 끌었다. 몰리 고다르는 소녀 같지만 대담한 디자인이 특징인 브랜드. 이번 쇼에서는 런웨이 한가운데 주방 시설과 와인을 두고 모델이 캣워크가 끝난 뒤 그곳으로 모이는 스토리를 구성했다. 마더오브펄은 지난해 런
던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에 영감을 얻 었다. 하나의 컬러와 패턴을 실루엣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을 택하면서 굵기와 크기가 다른 줄무늬, 물방울 무늬들이 리듬을 타고 등장했다.
또한 한국 출신 표지영 디자이너의 레지나표는 여성스러우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으로 완성도 있는 런웨이를 완성시켜 국내외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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