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상상력은 부드러워야(이남호<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최근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너무 엄숙하고 격렬하고 무겁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니까 소설이 그러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요리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부드러워야 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굳으면 그 작가는 시대적 진실의 수신기 역할을 하기 어렵고, 그 작가의 작품은 시대적 진실의 송신기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다.
중견작가로서의 세련성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두편 발표되었다. 그것은 이동하의 『과천에는 새가 많다』와 최상규의『돌팔매질』이란 작품이다.
『과천에는 새가 많다』는 새들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들의 삶을 반성해보는 작품이다. 작중화자가 관찰하는 새들의 삶이란 삶의 어려움을 자각치 못하는 어리석은 삶이다. 그 삶은 역시 작품속에 잠시 등장하는 정신박약아의 삶과 동질이다. 그러한 삶은 우리시대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죽음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작중화자가 만난 새의 죽음과 정신박약아의 사라짐은 그것을 말한다. 그러면 우리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물음에 대하여 작가는 언제나 쫓기면서 치사스럽게 아등바등거려야 살아남을수 있다고 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답이 아니라 우리들의 그러한 삶이 진정한 삶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과천에는 새가 많다』라는 제목은 재미있는 반어법이 된다.
현재 과천에는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고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특히 생존을 위한 분주함에 정신이 없다고 말하수 있겠다. 왜냐하면 새로운 외곽아파트촌의 사람들이란 사회의 급변을 전위에서 체험하는 삶들이라고 할수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는 평화스러운 새들의 터전인 과천에 새들을 몰아내고 아등바등거리는 인간들의 삶을 심어놓았다. 어떻게 사는것이 보다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인가를 생각할때 『과천에는 새가 많다』라는 반어는 슬픈 여운을 남긴다.
『돌팔매질』이란 작품의 주제도 이와 관련성이 있다. 주인공은 돌팔매질의 명수인데, 그 돌팔매질이란 행위자체는 어떤 스포츠보다 순수한것이다. 마치 달리기 자체가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띠지않는 순수행위듯이 돌팔매질도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 돌팔매질로 불특정한 대상을 공격하게 된다. 순수 행위가 파렴치한 공격행위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변모를 통하여 작가는 착한 삶들의 가슴에 분노와 공격욕구를 조장하는 우리시대의 불륜을 고발하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위험수위를 지적해주는 작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