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있는 정치인이라 생각했는데, 위선적인 모습에 충격받았다."
"여성인권 존중 공약 인상적으로 봤는데…" #고대 철학과 "과방에 안 지사 편지 어떻게 할지" #"한국당 지지해도 안희정만은 괜찮다 했는데…" #"소신있는 정치인 믿음 깨졌다"
지난 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공개적으로 안 전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가운데 안 전 지사의 정치적 기반인 고려대와 젊은 세대, 충청권 시민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안 전 지사의 비서실은 "(두 사람이)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안 전 지사는 다음날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잘못을 인정하며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6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만난 대학원생 이유정(25·여)씨는 "(안 전 지사의) 여성인권 존중하는 공약과 행보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성폭행 소식을 접하니 충격적이다. 겉과 속이 다른 그의 위선에 나도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83학번인 안 전 지사의 직속 후배인 고려대 철학과 김모(21)씨는 "철학과 동기들은 오전부터 안희정 얘기뿐이다"면서 "소신 있는 정치인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철학과 과방에 안 전 지사가 쓴 편지가 액자에 들어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과방에 있는 편지에는 안 지사의 친필로 "우리는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 세계와 우주에 대해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내야 합니다"고 적혀있었다.
사회학과 김용문(25)씨는 "정치인 개인에 충성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느꼈다. 안희정 지지 모임도 바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나. 잘잘못을 가리고 처벌하는 시대가 온 건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문과대학의 한 교수는 "젊고 청렴한 이미지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라 놀랐다"면서 "예술, 학계에 이어 정치계 미투가 퍼지면서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충청권 민심도 마찬가지였다. 안 전 지사가 중퇴한 뒤 2003년 명예졸업장을 수여한 남대전고 졸업생 전진우(30)씨는 "안희정은 송중기와 함께 모교의 자랑이었다"면서 "학교 망신으로 전락해 안타깝지만 미투운동으로 실체가 드러나 다행이다"고 말했다.
충남 논산, 안 전 지사의 이웃 동네에 살았다는 윤모(56)씨는 "지난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도 현수막을 걸어 응원하며 차기를 기대해서 그런지 고향 어른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본가가 충남 논산인 직장인 박모(30)씨는 "부모님이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보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해도 늘 안희정만은 괜찮다고 생각하셨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실망은 물론,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더라"고 전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5일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3월 행복한 직원 만남의 날'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란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여성국 · 정진호 기자 yu.sungkuk@joongang.co.kr